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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핵 안보 인터뷰 시리즈: 미-중 핵 경쟁의 오늘과 내일 ②] 미-중 핵 군축, 왜 어려운가?
지난해 말, 오바마 행정부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중국 간 공식 핵 군축 대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그 이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핵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두 국가 간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태재미래전략연구원은 이러한 문제 의식 아래 2024년 <핵 안보 인터뷰 시리즈: 미-중 핵 경쟁의 오늘과 내일>을 기획했다. 국내외 핵 안보 전문가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군비 통제의 주요 도전 과제와 협력의 가능성을 고찰하고자 한 것이다. 여덟 명의 저명한 핵 안보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중 간 심화되는 핵 경쟁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군축 논의를 구체화할 실질적인 방안을 탐색했다. 특히 핵전략, 군축 협상, 신뢰 구축 조치 등의 핵심 의제와 관련해 긴장 완화와 관계 안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조망해 보았다.
본 시리즈는 총 3편으로 구성된다. 1편 <새로운 중국 핵전략의 도래?>에서는 중국의 핵 전력 증강 배경과 그 전략적 함의를 분석한다. 2편 <미-중 핵 군축, 왜 어려운가?>에서는 양국 간 군축 협상의 구조적 장애물과 상호 인식의 차이를 살펴본다. 마지막 3편 <핵 위험 감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는 위기 관리와 신뢰 구축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한다.
태재미래전략연구원은 본 시리즈를 통해 교착 상태에 빠진 미-중 핵 대화의 진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건설적이고 지속 가능한 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8명의 전문가는 다음과 같다.
1. 데이비드 로건 David Logan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조교수)
2. 프란체스카 지오바니니 Francesca Giovannini (하버드대 벨퍼센터 핵관리프로젝트 국장)
3. 장톈자오 Tianjiao Jiang (푸단대 발전연구원 부교수)
4.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
5. 에이미 울프 Amy Woolf (미국대서양협의회 선임연구원)
6. 제프리 루이스 Jeffrey Lewis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
7. 매트 코다 Matt Korda (미국과학자연맹 핵정보프로젝트 부국장)
8. 낸시 갤러거 Nancy Gallagher (메릴랜드주립대 국제안보센터 소장)
제2편 미-중 핵군축, 왜 어려운가?
1. 배경
미국과 중국 간의 핵 군축 대화는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수적인 과제이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중 간 핵 군축 논의는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 되었으며,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양국 간 대화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쟁 중심의 적대적 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관계가 경직되었고, 러시아를 포함한 삼자 군축을 추진하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도 중국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화 재개의 노력을 이어갔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이루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현재 전 세계가 기대감 반, 불안감 반으로 트럼프 2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오랜 기간의 교착 상태는 양국 간의 핵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고, 군축 체제의 신뢰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핵전쟁의 위험에 대한 미, 중의 공통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왜 핵 군축에 있어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 정부가 여러 행정부를 거치며 중국과의 핵 군축 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했지만, 중국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중 간 신뢰 부족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과거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중국을 배제했던 사례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메릴랜드주립대 국제안보연구센터의 낸시 갤러거(Nancy Gallagher) 소장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 유엔에서 반위성 무기(anti-satellite weapons) 및 핵무기의 지구 궤도 배치를 금지하는 결의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을 제외했던 사건들을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졌는데, 이는 미국이 중국을 동등한 협력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중국 측에 심어주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갤러거 소장은 또한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노력이 중단되었고, 결국 양국 관계가 경쟁 중심으로 전환되었다고 평가한다. 과거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고 “조건 없는 대화를 운운하며 대화 단절 상황을 ‘초기화(reset)’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중국에 현실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러한 접근법이 대화의 성사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갈등 속에서도 미-중 핵 군축은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양국의 수직적 핵 확산을 방치할 경우, 핵확산금지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NPT) 체제가 붕괴할 수 있으며, 양국 간 갈등이 국제적 차원의 위기로 비화돼 핵전쟁으로 이어지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간 지속적인 대화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양국 간 신뢰를 회복하고 군축 협정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대화의 틀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양국은 서로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경쟁을 완화하고 실질적인 군축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장애물을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 미-중 핵 군축의 장애물
(1) 인식의 차이
미국과 중국이 군축을 논의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두 나라가 군축과 관련된 여러 개념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투명성, 신뢰 구축, 그리고 핵전략의 진화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버드대 벨퍼센터(Belfer Center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Affairs)의 핵관리프로젝트 국장인 프란체스카 지오바니니(Francesca Giovannini)에 따르면, 미-중 간에는 투명성에 관한 큰 인식 차가 존재한다. 지오바니니 국장은 “미국은 투명성을 정량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며, 핵탄두와 전달 체계의 수량 등 수치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중국의 군사력을 평가”하려 하는 반면, “중국은 투명성을 질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양국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수치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뢰 구축 방식에서도 양국 간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지오바니니 국장은 “미국은 전술적 차원에서 신뢰를 쌓은 후 위기관리와 갈등 해결을 통해 전략적 합의로 나아가는 상향식을 선호”하지만, 이에 비해 “중국은 전략적 수준에서 먼저 방향을 조율한 후 전술적 세부 사항으로 내려가는 하향식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미국대서양협의회(Atlantic Council)의 에이미 울프(Amy Woolf) 선임연구위원 역시 사안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미국은 실질적인 위험 감소 조치를 통해 신뢰를 쌓으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상호 취약성을 인정하고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차별적인 우선순위는 양국 간 신뢰 구축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핵전략의 진화 방식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의 제프리 루이스(Jeffrey Lewis) 소장에 따르면 “미국은 핵 문제를 수학적, 정량적으로 접근하며 기술적 세부 사항과 수치에 중점을 두는데, 이는 냉전 시기 소련과의 경쟁 속에서 장기간 발전되어 온 것”이다. 반면, “중국은 질적 관점에서 핵전략을 이해하며, 생존을 위한 억제력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역사적 경험과 위협 인식을 바탕으로 핵전략을 채택”해 왔다. 더불어 “미국은 군과 민간 전문가가 협력하여 다양한 견해를 반영하는 정교한 정책 시스템을 운영하는 반면, 중국은 공산당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통해 정책 결정을 내리며, 이는 종종 정책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편향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진단했다.
(2) 외부 요인
미-중 간 핵 군축 대화를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러시아와 같은 외부적 문제들이다. 서울대학교의 신성호 교수는 “미국은 현재 전략적으로 중국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러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며, 특히 핵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의 논리를 강조해 온 도널드 트럼프의 핵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향후 군비 통제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군축 대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러시아와의 핵 균형 유지라는 또 다른 도전을 병행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신성호 교수는 이를 두고 “미국이 단순히 대중 전략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군축 대화 환경을 개선시키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중 간의 군축이 양국 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다자적인 핵 군비 통제 및 국제적 군사 관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시사한다.
(3) 구조적/정책적 제약
다음으로, 미-중 핵 군축 대화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양국이 직면한 구조적, 정책적 제약에서 비롯된다. 중국의 핵전력은 미국과 러시아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최근 급격히 증가하며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핵무기의 양적 균형은 군축 논의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중국은 이 균형 없이는 대화가 성사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동시에, 각국의 정책적 우선순위와 관점의 차이 역시 군축 논의를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성호 교수는 “미-중 간 핵 격차가 상당한 지금 상황에서 군축 대화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미국의 선의만 믿고 군축에 나설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과 최소한의 핵 균형을 이루기 전까지는 군축 대화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실은 중국의 일관된 정책적 입장에 잘 반영되어 있다. 울프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 수준으로 핵무기를 감축하지 않는 한, 핵무기 숫자를 제한하는 협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는 수십 년간 변하지 않은 중국의 공식적인 정책 기조라고 언급했다. 또한 “미국과 중국 모두 여전히 핵무기를 국가 안보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어, 군비 통제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양국의 정책적 제약을 군축 대화의 핵심 장애물로 보았다.
미국과학자연맹(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핵정보프로젝트의 매트 코다(Matt Korda) 부국장은 중국의 군비 통제 협상 경험 부족과 투명성 결여를 또 다른 구조적 장애물로 꼽는다. 그는 “중국은 군비 통제 협상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협상 기술도 부족하며 협상에 쉽게 응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유한 핵무기의 규모나 저장고와 같은 핵 시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비 통제에서 “최소한의 정보 공유는 필수적”이라고 덧붙이며, 투명성 부족이 미-중 군축 대화의 추가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4) 국내 정치적 제약
마지막으로, 미-중 핵 군축 대화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국내 정치적 제약에 기인한다. 양국 간 복잡하게 얽힌 경제적, 정치적 상황은 군축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일부 선동적 정치인들이 경제 상황의 악화와 이에 따른 반중(反中) 감정의 확산을 표심을 얻는 데 이용하면서 중국을 생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에 대해 터프츠대 플레처스쿨(Fletcher School)의 데이비드 로건(David Logan) 교수는 “미국 국내 정치에서 중국은 점점 더 큰 위협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미국이 핵무기 증강을 추진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반중 감정은 군축 대화의 시작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이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로건 교수는 “혹여 미국이 배치 핵무기의 규모를 축소한다고 해도 중국이 바로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미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미-러 군축 조약을 통해 냉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와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 역시 경제 성장 둔화로 인한 내부적 불안이 심화되면서 미국과의 군축 대화에 대한 의지가 감소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경제적 어려움이 장기화할수록 미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미(對美)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코다 부국장은 반미, 반중 감정의 악화로 인해 “양국 간 교류가 줄어들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민 교류와 학술 교류 모두 크게 감소하였으며, 각국의 정부 또한 서로의 정책 결정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신뢰 구축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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