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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가겠다는 담대한 비전의 힘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 우주선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후 미국은 60년대 중반까지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앞지르지 못했다. 막대한 인력과 예산 투입에도 소련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던 미국이 극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는 “60년대가 끝나기 전 미국이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젊은 대통령의 선언이었다. 존 F. 케네디는 “우리는 이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다.”라는 상징적인 연설을 통해 달 탐사를 단순한 기술적 도전이 아닌, 국가의 상상력과 미래 비전을 결집하는 정치적 프로젝트로 끌어올렸다. 소련이 지구 궤도를 도는 수준에서 우주 경쟁의 선두에 있었다면 미국은 지구를 벗어나 ‘달’이라는 담대한 비전을 통해 새로운 우주 시대를 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NASA(미국항공우주국)의 ‘아폴로 계획(Apollo Program)’, 일명 ‘문샷’이다. 정치적 리더십과 사회적 합의가 어떻게 하나의 미션을 숭고한 공동의 여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국가 혁신을 주제로 광범위한 연구를 주도해 온 저명한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 (Mariana Mazzucato) 교수의 『미션 이코노미』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극복할 해법을 60년대의 아폴로 계획에서 찾았다. 책의 원제인 ‘Mission Economy: A Moonshot Guide to Changing Capitalism’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달 착륙 프로젝트를 NASA가 어떻게 성공시켰는지 입체적으로 조망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저자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혁신의 원칙들을 세우는 바탕이 된다.
신화를 넘어서: 정부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미션 이코노미』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고의 틀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관념을 해체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은 정부의 역할을 왜곡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와 환경 파괴 등의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그 문제의 원인인 기존의 이론에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투성이 이론은 문제투성이 실천으로 이어져 미션 중심의 접근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마추카토 교수가 지적하는 정부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는 다음과 같다.
1. 기업은 가치를 창출하고 위험을 감수한다. 정부는 위험을 없애고 조정할 뿐이다. 2. 정부의 목적은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것이다. 3. 정부는 기업처럼 움직여야 한다. 4. 외주화는 세금을 절약하고 위험을 낮춘다. 5. 정부가 승자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
기존 경제 모델이 주입한 이러한 신화들은 정부의 역할을 왜곡하고 시장의 자율적 운영과 자원의 최적 활용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방식으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그 결과, 정부는 사회적 책임을 지는 역할을 저버리고 민간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형태로 전락하였으며 그 시스템은 점차 굳어져 누구도 선뜻 ‘잘못되었다’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저자는 외주화 신화는 불필요한 비용 증가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공무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박탈’한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공무원의 발전과 공공 부문의 성장이 멈춤과 동시에 민간 공급자가 공공 활동을 더 많이 맡게 될수록 정부 역량은 약해지고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는 내부 조직을 개혁하고 스스로 가장 큰 불확실성을 부담하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담대한 혁신은 사회 전체의 의식 전환 필요
기업과 시민, 함께 해야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디오테스(idiotes)’라고 불렀음을 언급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바보나 무지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용어로 당시 공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활동적 삶(vita activa)’이란 인간이 공적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하고 공동체의 방향에 관여하는 삶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시민들은 이와 대비된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에 머물며 공적 세계의 관객으로만 남아 있다.
저자는 정부와 시장의 담대한 혁신은 제도적 변화뿐 아니라 이를 지지하고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사회 전체의 의식 전환’과 ‘문화’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변화는 위로부터만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의 점진적 전환과 상호작용 속에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사회 전체의 각성과 함께 공공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해 나갈 정치적·제도적 주체의 역할 또한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정부가 단순히 시장을 보완하거나 규제하는 수준을 넘어 ‘미션’을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야만 하는 이유다.
마추카토는 21세기의 정부는 단지 규모를 키우거나 축소하는 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션 중심 접근’을 주도할 수 있는 조직·도구·문화를 재발명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불확실성과 시행착오에 열려 있어야 하며 야심찬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때로는 ‘운동장을 기울일 용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마추카토는 달 탐사 프로젝트가 진행된 과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뜯어본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가능하도록 이끈 변화의 요소들을 통해 기존의 신화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경제의 원칙들’을 제시한다.
미션 지향적 접근으로 이끌 일곱 개의 주요 원칙
1. 가치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과정에 관한 새로운 접근방식 2. 시장 형성 3. 조직 변화 4. 금융과 장기 재정 자원 5. 분배와 포용적 성장 6. 협력관계와 이해관계자 가치 7. 참여와 공동창출 |
첫째, 가치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과정에 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 정부, 시민사회는 역할을 분담하는 게 아닌 서로를 돕는 파트너로서 협력해야 한다. 가치 창출의 방향은 단순한 경제적 가치 창출을 넘어 공공의 이익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맞춰져야 한다.
둘째, 시장 형성이다. 저자는 미션 중심 경제에서 시장을 단순히 ‘고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 창출하고 형성하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역할도 단순히 시장의 실패를 수정하는 것으로 인식하던 제한적인 관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가치 있는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셋째, 조직 변화는 우리가 공통의 목적을 추구한다면 ‘협업 역량’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경쟁보다는 협력과 학습, 실험적인 사고가 요구되며 단기적 성과가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넷째, 금융과 장기 재정 지원이다. 공공 부채와 적자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넘어, 경제가 사회의 목적을 위해 일하게 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그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분배와 포용적 성장이다. 저자는 ‘선분배’를 강조한다. 이는 재분배가 아니라 가치 창출의 과정에서부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제 모델에서 분배의 공정성은 핵심 요소이며, 이를 통해 보통의 사후 조정보다 일자리 창출과 같은 핵심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고 공동 소유 구조를 좀 더 강조한다. 가치 창출이 위험 감수와 실험(역량)을 요구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재원은 고갈되지 않고 재창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협력관계와 이해관계자 가치이다. 기업과 정부는 기생적 협력이 아닌 ‘공생적 협력’ 관계여야 한다. 서로가 공통의 목표를 기반으로 협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업과 정부가 각자의 이익을 뛰어넘어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협력할 때 진정한 경제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이나 보건, 에너지 분야에서 공생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오늘날의 중요한 과제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원칙은 참여와 공동 창출이다. 가치를 공동으로 창출하려면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시민 의회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 시민과 공동체가 상호작용하며 실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 한계 극복할
‘미션 중심 경제’
저자는 이러한 신화적 믿음과 억압적 시스템을 극복하고 기존 경제 모델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접근으로 ‘미션 중심 경제’를 제시했으며, 경제가 단순히 효율성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이 ‘일곱 가지 원칙’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며 이 원칙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을 넘어서기 위한 중요한 대안이자 ‘신화적 믿음들을 부수는 과정’에 해당한다.
책에서는 신화적 믿음을 부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한 사례로 한국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은 1970년대 값싼 제조시설을 찾던 미국 기업들의 관심을 계기로 반도체 산업에 처음 발을 들였다. 정부는 10년에 걸쳐 반도체 대량 생산을 위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했고 가전제품 등 전자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 산업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84년, 자체 기술로 첫 상업용 다이나믹 RAM을 출시하며 글로벌 전자산업의 선두 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은 정부 주도의 분명한 방향성과 민간의 참여가 맞물린 미션 중심 전략이었다. 초기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창출해낸 ‘문샷’의 한 형태이자 저자가 강조한 “정부가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는 명제를 한국 사회의 기억 속에 뚜렷이 새긴 사례다.
우리 사회의 미션
“무엇을 위해 함께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
아폴로의 시대가 던졌던 질문은 오늘날 우리 앞에 다시 놓여 있다. 인류는 한때 ‘달’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공동의 목표를 품고 나아갔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의 궤도에 머문 채 더 큰 방향성과 목적을 잃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과거의 답을 품은 채 지금 중대한 궤도의 전환점에 서 있다. 세계적 경제 규모에 걸맞은 혁신 역량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향 없는 역성장, 민간과 정부의 단절, 짧은 호흡의 정치가 그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 청년의 불안, 기후위기 앞의 무기력, 지역과 계층의 분열은 이제 더 이상 부분적인 해법이나 임시방편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과제들이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작은 조정이나 미봉책이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미션’의 복원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함께 움직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미션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이기 시작할 때, 바로 그 지점에서 미션 이코노미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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