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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중국 법치와 중국정치체제 변화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2017.05.29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2017년 개헌논의와 각국의 정치 체제 (2) 중국 - 중국 법치와 중국정치체제 변화
저자: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No.2017-16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개헌논의와 각국의 정치 체제로 고립주의, 트럼프 현상 등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한계이다. 헌법개정, 선거제도 개혁 등, 각국 정치체제에 주어진 현안 혹은 당면 과제는 무엇이라고 인식하는지를 살펴보고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미래를 바라보는 각국 싱크탱크들의 예측과 제안을 들어본다.

중국에서 법치(法治)는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고 모든 사회 활동이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중국에서는 법치 혹은 헌정(憲政)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회주의 중국이 당치(黨治)에서 법치(法治)로, 인치(人治)에서 제도화(制度化)로 나아가 최종적으로 사회주의 법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14년 12월 4일 첫 국가헌법일(憲法日)이 제정되었다. 18기 4중전회에서는 <중공중앙의 의법치국 전면 추진 약간 중대 문제에 관한 결정(中共中央關於全面推進依法治國若幹重大問題的決定)>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법에 의한 통치(依法治國)를 본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선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에 대한 귄위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예컨대 시진핑은, “헌법은 국가의 근본법이고, 치국안방(治國安邦)의 총 장정(總章程)이며 최고의 법률 지위와 법률 권위, 법률 효력을 갖고 있으며, 근본성(根本性), 전국성(全局性), 안정성(穩定性), 장기성(長期性)을 갖추고 있다.”고 언급하시도 했다. 또한 “헌법 존엄을 수호하는 것이 바로 당과 인민 공동 의지의 존엄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바야흐로 중국에서 법치와 헌정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법치(法治)는 여전히 당치(黨治)와의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중국공산당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법치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법치 과정에서 중국공산당과 헌법의 명확한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서문에는 중국공산당의 지위, 권위 등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여러 군데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국신민주주의혁명의 승리와 사회주의 사업의 성과는 중국 공산당이 중국 각 민족과 인민을 이끌고 얻어낸 성과”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영도 지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중국 각 민족과 인민은 계속 중국공산당의 영도 하에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장기 혁명과 건설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각 민주당파와 각 인민단체가 참여했다”고도 강조하고 “중국공산당 영도의 다당합작과 정치협상제도가 장기간 존재하고 발전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헌법 서문에 “헌법은 국가의 근본법이고 최고 높은 법률 효력을 지난다”고 언급하고 있고 “전국 각 민족과 인민, 모든 국가 기관과 무장 역량, 각 정당과 사회단체, 각 기업과 사업 단위모두 헌법을 근본적인 활동 준칙으로 삼고, 헌법 존엄 수호에 책임을 다하고, 헌법 실시의 책임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중국의 실제적인 권력을 중국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는 없다. 여기에 당치와 법치의 부조화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은 그동안 중국의 기본법으로서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 오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 헌법은 지난 1982년 12월 4일 헌법 제정, 공포 이후 1988년 4월 12일, 1993년 3월 39일, 1999년 3월 15일, 2004년 3월 14일 등 네 차례 부분 수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2년 12월 4일에는 현행 헌법 제정을 기념하여 처음으로 국가 헌법일을 제정하기도 했다. 시진핑은 2012년 12월 4일 현행 시행 헌법 제정 공포 30주년 대회에서 몇 가지 중요한 발언을 했다. 시진핑이 30주년 대회에서 현행 헌법이라고 명시적으로 발언한 것은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국가운영 패러다임을 전환한 이후 첫 번째 제정, 반포된 헌법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1949년 임시 헌법의 성격을 가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강령(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共同綱領)>과 1954년 제1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에서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中華人民共和國憲法)>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사회는 헌법을 기반으로 하는 법치보다는 마오쩌둥(毛澤東) 일인 집권이 영향력을 더 발휘하는 시기였다. 또한 개인 장기집권 못지않게 문화혁명 등 영향으로 헌법의 기능이 발휘되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11기 3중전회를 기점으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의 국가 방향이 새롭게 설정되면서 강력한 법에 의한 통치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당시 덩샤오핑은 “인민민주를 보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법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드시 법제화와 제도화를 통해서 지도자의 임의적인 변화 요구에 따라 바뀌고, 지도자의 입장에 따라 바뀌는 중국적 현상을 극복하고 모든 당과 국가의 활동이 법과 제도의 기반 위에서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법제화와 제도화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문화혁명이 가져온 제도의 파괴와 붕괴가 사회주의 실패를 야기했다고 생각하는 덩샤오핑으로서는 개혁개방과 동시에 사회주의 현대화 실현을 법과 제도의 기반 위에서 추진하는 것만이 과거의 폐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임을 인식하고 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 역시 헌법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기초 위에서 법치를 설계한 것이 아니라 당과 국가 사회 활동에 대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개입을 보장하는 절차적 수단과 도구로서 법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더욱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덩샤오핑의 법치와 제도화 강조는 법에 기반을 둔 통치(依法治國)라기 보다는 법을 수단으로 하는 통치(以法治國)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이 공론화되었다. 물론 그 이유는 바로 당의 영도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이 필요했다는 도구적 관점이었지 법치가 최종 목표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 결과 기본법이라는 헌법은 시대적인 상황과 정책적 필요성에 따라 1988년, 1993년, 1999년, 2004년 등 네 차례 부분 수정 과정을 거쳤다.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헌법이 복무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지도부의 의지를 담아내고 변화하는 환경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 왔다.

시진핑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 역시 헌법의 기본 가치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법치의 강조는 헌법 가치의 수호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헌법과 국가의 앞 길, 인민의 운명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헌법의 권위 수호가 바로 당과 인민의 공동 의지를 수호하는 권위라고 하는 주장도 모두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중국 지도자들에게 법치 강화와 심화라는 대의명분은 언제나 당의 통치 혹은 영도를 가능케 하는 근본이고 출발점이어야 한다. 따라서 헌법과 당의 영도를 동일시하는 사회적 환경의 조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헌법의 권위는 당의 권위만큼 매우 높은 경지로 올라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헌법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은 바로 당과 인민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 의지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고 헌법의 실시를 보장하는 것은 바로 인민의 근본 이익 실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는 모두 헌법 가치를 통해서 당과 국가의 사업을 순조롭게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매우 정교한 법치로 포장된 정치 논리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유난히 의법치국(依法治國)이 강조되고 있다. 2012년 12월 4일 개최된 헌법 공포 시행 30주년 대회에서 시진핑은 “어떠한 조직 혹은 개인도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특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체의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는 모두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여기서 말하는 어떠한 조직에는 중국공산당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고 개인 역시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중국공산당 영도간부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해당 회의에서 시진핑은 “우리는 반드시 의법치국(依法治國)을 당의 인민 영도, 국가 거버넌스의 기본 방략(方略)으로, 법치를 치국이정(治國理政)의 기본 방식으로 견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의법치국을 국가 거버넌스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이러한 기본 방향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으로서 ‘법치’를 위치 지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에 의한 통치를 위한 과정에서 ‘법치’가 목적이 아니라 기본 수단으로 간주, 그럼 법치를 수단으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 바로 당과 국가에 대한 당 중앙의 통일적인 영도 실현이다. 그렇다면 법치는 결국 중국공산당 통치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로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권위주의적인 형태를 보이는 중국의 정치체제에서 체제의 유연성과 적응성을 법치라는 수단을 통해서 개량화시켜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을 기초로 하는 이른바 법치의 강조가 앞서 말한 대로 정치권력을 제약하고 제도의 틀 안에서 운용하게 한다는 일반적 의미의 제도화 수준 제고와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봐야한다. 중국은 여전히 당국가체제의 형태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민(國民)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인민 권리의 최고 가치로서의 헌법 지위라기 보다는 여전히 당국가체제에서는 당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헌법 등 법치 요소가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중국의 법치 혹은 헌정의 강조가 매우 기증주의적인 시각과 관점에서 논의되고 실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는 결국 중국의 당국가체제가 갖고 있는 역사적 규정력에 따라 운신의 폭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진핑이 말한대로 “공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는 헌법의 핵심 내용”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법에 의거하여 전체 공민이 광범위한 권리를 향유하도록 보장하고 공민의 인신권(人身權), 재산권(財產權), 기본정치권리(基本政治權利) 등 각종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도 지극히 옮은 말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가체제에서 권력을 제약하는 수단으로서 헌법의 영향력 혹은 구속력이 현실 권력인 당의 권력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 당이 국가와 사회에 비해서 압도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현실적인 최고 권력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의 명목적인 규정과 무관하게 현실적으로 당의 권위가 헌법의 권위보다 위에 존재한다. 이러한 객관적인 현실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면 당의 권위와 헌법위 권위, 당위 권력과 헌법의 권력은 사실상 당의 권위와 권력에 헌법이 종속되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헌법의 권위를 당의 권위에 앞세우는 일이 가능할지가 진정한 의미의 법치를 구현해내는 선결과제인 셈이다.

시진핑은 “만약 헌법이 경시되고, 약해지고 심지어 훼손된다면 인민의 권리와 자유는 보장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헌법의 존재 가치를 설명할 뿐이다. 중국의 지난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인민의 권리가 꼭 헌법에 의해서만 보장되어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대약진의 폐해도 그렇고, 문혁의 경험도 그렇고 천안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헌법이 바로 인민 권리의 ‘보증서(保證書)’”라고 강조하지만, 권리를 보증할 만한 어떠한 권력도 갖고 있지 않았었다. 오직 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헌법 가치는 앞서 말한대로 당의 통치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조력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국 인민에게 헌법이 정말 필요한지 그 절박함이 현저하지 않다.

시진핑은 “헌법의 근본적인 기초는 인민이 내심으로 우러나서 지키려는데 있고 헌법의 위력(偉力)은 인민의 진실하고 성실함에서 나오는 믿음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민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 사회에서 헌법을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각인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일천한 상황 인식에서 헌법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의 문제는 그렇게 절실하고 절박하지 않다는 점이다. 당은 가깝고 법은 먼 상황에서 헌법의 지고지순한 가치를 알고 이를 지켜나간다는 준법 의식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도 헌법이 ‘살아 있어야(活)’ 인민들이 법에 의해서 광범위한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는 것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헌법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고 인민군중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헌정의 실시가 진정으로 전체 인민의 자각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헌법일(國家憲法日)을 제정하고 헌법 선서제도를 건립하는 것이 헌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대한 조치는 아닐 것이다. 중국 인민들이 헌정에 대한 필요성과 헌법의 지고지순한 가치를 체화하지 않는 이상 당과 국가에서 헌법이야말로 ‘근본대법(根本大法)’이고 인민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수호하는 가장 큰 ‘기대만 산(靠山)’이라고 선전해도 우이독경일 뿐이다. 신중국 성립 이후 헌법 수호와 헌정 쟁취를 위해서 치열하게 싸워본 경험이 전혀 없는 중국 인민들에게 헌법과 헌정의 필요성은 여전히 절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이 유독 헌법의 가치를 강조하고 법치를 주장하는 데는 다른 의도가 깊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중국의 정치체제의 변화 특히 권력구조의 변화를 법과 제도를 통한 매우 높은 합법성의 기초 위에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혹은 개인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서만 유지되는 취약한 통치 정당성에서 정치권력을 공고화하는 수단으로서 헌법 등 법과 제도의 활용은 매우 매력적인 도구로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지도자로서 시진핑의 정치 장악력이 높고 이미 ‘핵심’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제 설정과 추진 능력에서 시진핑은 매우 유리한 고지를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지위를 충분히 활용하여 법과 제도의 변화를 통한 권력구조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유인이 시진핑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법과 제도를 통한 정치권력의 강화라는 명분을 제도의 틀 내에서 추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서 헌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중국정치의 안정과 지속을 설명해낼 수 있는 ‘관행’과 ‘명분’이라는 두 개념을 헌정과 결합시켜 중국정치체제의 변화를 도모하는 권력 구조의 새로운 형태를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19차 당대회 관련하여 최대 관심사는 후계구도를 포함한 지도부 구성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 거취가 매우 중요한 관찰 포인트이다. 중국 외부의 시각은 15대 이후 관행적으로 지켜 온 이른바 ‘칠상팔하(七上八下)’의 적용 여부이다. 왜냐하면 지난 18대 지도부 구성에서도 적어도 정치국 상무위원 구성에서는 이 관행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국 위원에 대한 ‘이상삼하(二上三下)’는 부분적으로 적용된 측면이 있지만 이른바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구성에서는 여전히 ‘칠상팔하’가 매우 중요한 관행화된 제도로 정착되어 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의 시각에 대해서 중국 내부의 의견은 다르다. 지난 2016년 10월 18기 6중전회 이후 전체회의 정신 설명 과정에서 중앙판공청 조연국(調硏局) 부국장인 덩마오셩(鄧茂生)은 ‘칠상팔하’는 ‘규구(規矩)’일뿐 지켜야하는 강제성이나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덩마오셩에 의하면 ‘칠상팔하’는 관행적으로 얘기되는 것이고 당내 제도로 정착되지 않은 일종의 ‘규구’이기 때문에 제도적 구속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지켜야 하는 강제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일종의 관행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제도로서의 구속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치국 상무위원 구성에 있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칠상팔하’는 당내에서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것을 분명하나 반드시 지켜야하는 성문화된 당내 제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덩마오셩의 말에 따르면 당내 제도 측면에서 ‘칠상팔하’는 제도의 관행 혹은 관행적 제도라는 차원에서는 중요한 논거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당내 제도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야 하는 시진핑의 입장으로서는 제도는 아니지만 ‘칠상팔하’가 이미 당내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덩마오셩의 말대로 일거에 ‘칠상팔하’의 관행을 비제도적인 습관으로 치부하여 바로 폐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관행을 적절하게 처리한다면 시진핑은 왕치산의 거취를 통해서 오히려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고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좋은 수단으로 역할을 다할 수도 있다.

예컨대 관행을 제도로 정착시켜 ‘칠상팔하’를 온전히 하반기 개최되는 19대 정치국 상무위원 구성에 적용하여 왕치산을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5명의 은퇴를 기정사실화할 수도 있다. 그 명분은 바로 당내 관행의 제도화라는 법치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순조로운 지도부 교체의 관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록 관행이 당내 제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순조로운 은퇴의 길을 열어놓는 것은 법치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통치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시진핑에게도 훌륭한 명분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왕치산을 은퇴시키지 않고 계속 정치국 상무위원을 유임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 경우 역시 명분을 법치의 틀 내에서 찾는다면 법치의 훼손을 줄여나가면서 왕치산을 유임시키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재 추진이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국가감찰위원회 구성에 관한 법적 논의이다.

왕치산을 계속 가져가고 싶은 시진핑의 의중은 반부패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정당성에서 명분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왕치산의 유임은 ‘칠상팔하’라는 관행적 제도의 틀 속에서 보면 불법적(不法的) 혹은 비법적(非法的) 결과이다. 따라서 시진핑으로서는 법치의 정당성을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진핑 입장에서는 반부패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할순 있지만 관행을 파기한다는 것이 반부패의 지속이라는 명분으로 상쇄될 수는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왕치산의 거취를 ‘칠상팔하’라는 당내 제도 틀 내에서 한정해서 볼 것이 아니라 헌법 차원에서 접근하면 새로운 출로를 마련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기구에 대한 논의에 관심을 갖는 일이다. 헌법 제3장에는 7개의 국가기구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시되어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기구는 7개이다. 따라서 이 규정에 의하면 중국공산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기구는 아니다. 그러므로 중국공산당의 지도부 인선은 여러 논의가 헌법의 규정을 직접 받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헌법 서문에서 중국공산당도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속력은 전혀 없다.

그러나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기구가 되면 그 권한과 역할이 법적으로 보장받기 때문이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법치와 헌정의 실천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된다. 예컨대 산시(山西), 저장(浙江), 베이징(北京) 등 3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감찰위원회 개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국가감찰위원회로 만들고 그것을 헌법 제3장에서 규정하는 여덟 번 째 국가기구로 위상을 제고한다면 왕치산의 거취는 법치의 과정을 통해서 헌정의 질서 속에 순조롭게 정리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국가기구 수장은 만 70세를 넘어서는 재직할 수 없다는 헌법 규정이 있는데 왕치산은 1948년 7월 생으로 2018년 3월 개최되는 제13기 전국인대 제1차 회의 때 만 69세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8년 전국인대에서 헌법을 수정하여 국가감찰위원회를 제8 국가기구로 설립하고 왕치산을 국가감찰위원회 책임자로 인선한다면 왕치산은 은퇴를 하지 않고 국가기구 수장으로 자리를 옮겨 시진핑과 함께 19대를 보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왕치산의 연임 여부와 함께 시진핑의 권력 강화 역시 헌법의 수정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앞서 말한 중국 정치에서의 ‘관행’과 ‘명분’을 모두 고려한 고도의 정치행위를 통해서 시진핑을 국가주석에서 연임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면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중국공산당 당내 관행에는 정치국 위원이 두 번 이상 연임할 수 없고, 다만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할 경우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는 관행이 존재한다. 즉 정치국 위원과 상무위원 합해서 세 차례 재임할 수 있다. 지난 14대 이후 이 관행을 매우 정확하게 지켜왔다. 다만 유일한 예외가 있는데 바로 후진타오의 네 차례 정치국 상무위원 연임이다. 후진타오는 지난 1992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깜짝 발탁되어 은퇴한 2012년까지 20년, 즉 네 차례 정치국 상무위원을 역임했다. 기존 관행을 깨고 후진타오만 유일하게 네 차례 연임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후반기 두 차례는 국가주석을 겸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바로 이러한 관행을 법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제도화하고 이를 명분으로 삼아 권력 연장을 도모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의 수정이 필요하다. 국가주석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진핑은 ‘핵심’ 지위를 이용하여 헌법 수정과정에서 국가주석의 연임을 명문화할 수도 있다. 즉 헌법 제3장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기구 수장은 만 70세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문안을 수정하여 ‘단, 국가주석은 예외로 한다’는 문구를 집어넣으면 바로 시진핑은 국가주석의 지위로 2022년 20차 당대회 이후에도 2023년부터 5년 더 국가주석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시진핑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헌법 수정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시진핑과 중국이 주창하는 법치를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에 탈법적이거나 비법적인 과정이 아니다. 따라서 당내 오랜 기간 내려오는 관행과 명분을 통해서 헌법이나 법률 개정 혹은 신설의 법치 과정으로서도 왕치산의 연임과 시진핑의 집권 연장은 가능하다. 이 점이 바로 중국의 법치가 헌법의 지고지순한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연장에 동원 가능하고 특히 당내 관행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늘 정치체제의 통치 정당성과 합법성을 지원하는 기능주의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중국의 법치 혹은 헌정의 실현은 당국가체제의 한계 속에서 정치권력의 통치 정당성과 합법성을 획득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헌법 개정 논의나 법치 사회 구현 노력 등은 사실상 당의 통치를 강화하는 유력한 수단이자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가치라는 헌법 역시 중국에서는 기능주의적인 수단으로 당의 통치를 강화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대로 중국은 사실상 당이 국가와 사회 심지어 기업과 개인의 영역까지도 깊이 침투하여 통제 혹은 관리하는 거버넌스 행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치가 강조되면서 이러한 무형의 통치 관행은 법의 지배라는 틀에 묶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시진핑이 강조하고 있는 법치에 의한 통치에도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은 향후 다양한 층차에서 법에 의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화 노력을 경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언컨대 법치가 목적이 아니라 당국가체제라는 정치제제가 적응력을 높여가는 일종의 통치 정당성과 합법성 획득을 위한 수단적 가치로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수단적 가치는 왕치산의 연임이나 시진핑의 집권 연장 가능성 측면에서도 법치라는 이름으로 매우 유력하게 작동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에서 헌정 혹은 법치는 중국 정체제제의 안정화와 적응력을 높이고 지도부의 통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하는 좋은 수단이나 도구로 기능해왔다는 기능주의적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벌어질 법 개정 논의나 헌법 개정 움직임 역시 이러한 맥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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