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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기본소득운동 주창자 판 레이스의 ‘21세기 기본소득’

이관호 (SD)

2018.08.23

“기본소득은 인간의 자유를 위한 것”

‘한 사회의 모든 성원 개개인들에게, 다른 소득의 원천이 있든 없든, 아무 조건도 내걸지 않고, 현금의 형태로, 그것도 정규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것.’

벨기에 출신 정치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이렇게 5가지로 정의했습니다. 그가 일으킨 기본소득 운동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학자,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까지 결성되어 있습니다. 판 파레이스의 생각의 골자가 담긴 ‘21세기 기본소득’이 최근 출간되었습니다. <흐름출판사>

기본소득의 정의를 앞서 들었습니다만 우리 머릿속에는 ‘평등’의 개념이 먼저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저자는 이 운동을 펼치는 까닭을 ‘자유’에서 찾고 있습니다. 부자들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실질적인 자유를 위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가져온 파괴적 기술 혁명,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자동화의 물결, 이민의 확대와 커뮤니케이션의 세계화, 자원의 고갈, 가족이라는 전통적 보호막의 붕괴...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실존적 경제적 불안감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경제성장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믿음이 허물어지고 있다면서 그것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합니다. 첫째 경제성장이 과연 바람직한 일이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둘째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셋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업과 노동의 불안정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좌파든 우파든 경제성장을 지속하면 실업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억제할 수 있다는 폭넓은 합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판 파레이스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1960년대 황금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1인당 GDP는 몇 배 늘었지만 실업과 고용의 불안정성은 종식되지 않았고 자동화 심화가 불안정성까지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최저임금 보장, 최저시급 인상 등 잘 알고계시죠? 그러나 저자는 이런 정도로 사회 불안정이 해소될 수 있는 상황은 지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 가장 큰 문제로 가정경제가 해체되는 비율이 증가하고 핵가족의 크기도 계속 줄어드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거기다 이민 인구도 늘어가고 있죠. 노동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예속 상황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이것에 어떤 조건을 달면 안 된다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무조건적이고 현금으로 줘야 한다고요. 이 기본소득은 가구의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개인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개인적 수급권이고, 소득 조사 혹은 재산 조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또한 일을 할 의무와 연계되거나 일을 할 의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기본소득 주창자들 사이에서도 액수 등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들어가면 큰 차이를 보입니다. 저자의 주장은 윤리적인 정당성으로 보자면 액수가 높아야 하지만 정치적인 용이성을 감안하면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일단 현실을 고려하여 모든 국가에서 현행 1인당 GDP의 4분의 1 정도를 책정하자고 제안하는데요.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3만 2천 달러 수준이니까, 이것을 월 단위로 한번 계산해 보면 약 700달러 가까이가 됩니다. 월 70만원 남짓 정도가 되는 것이죠.

이 운동의 목적은 빈곤의 참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다 함께 자유롭게 하자는 데 있습니다.

이 책에는 기본소득과 비슷한 개념의 아이디어 몇 가지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본재산’과 같은 것인데요. 예를 들어 성인이 되는 시점에 모두에게 기본재산을 몰아서 지급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기본재산은 간단하게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연금보험의 형태로 나누어서 받으면 되니까요. 저자는 기본소득과 기본재산 이 둘이 비슷하지만 규범적 관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요. 기본재산은 성인 생활의 출발선에서 가급적 기회의 균등을 실현해보자는 것에 목표가 있는 반면, 기본소득은 일생에 걸쳐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자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죠. 또한 지적 능력이 결핍된 이들은 인생의 출발점에서 그 돈으로 현명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떨어지고 추후 최선이 아닌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회의 또 다른 불안정 세력으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기본소득 안을 지지합니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고 이론화 한 사람은 1953년 옥스퍼드 경제학자 조지 콜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산이란 물려받은 사회적 유산에 지금 흘린 땀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이 공동의 유산이 창출한 부분은 모든 시민들에게 한몫씩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리고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이 이 이론을 지지했습니다. 판 파레이스는 1988년 ‘기본소득 유럽네트워크’를 창립했고, 2009년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가 출범하였습니다.

기본소득, 언젠가 매달 100만원씩 모두에게 지급되는 시대가 올까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내년 최저시급은 얼마이죠? 올해보다 10.9% 인상된 8,35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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