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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재 북리뷰] 강효백의 「중국 통째로 바로알기」, “일본과 서양이 오도한 중국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었다”

문선호 (기초연구센터 SD)

2018.12.13

“부끄러웠다.”

강효백은 지난 9월 낸 ‘중국 통째로 바로알기’를 이 말로 시작합니다. 책과 매체, 특히 서양과 일본의 서적에서 중국에 대해 얻은 정보가 얼마나 실상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중국에 오래 살면서 절감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중국이 좁다고 느껴질 때까지 방랑자처럼 떠돌았다고 합니다. 이 책을 발로 썼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강효백은 중국을 잘못 보게 만드는 네 가지를 듭니다. 첫째 마르크스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적 편견,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식 프레임, 진상을 오도하는 일본식 접근, 이분법으로 가르는 미국과 서양의 접근입니다. 모두 잘못되었거나, 한 측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한다는 것이지요. 강효백은 그 대신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앨버트로스의 조망, 체험의 내시경이 필요하다며 이 책을 그런 마음으로 썼다고 합니다.

가슴이 뜁니다. 이런 식의 명쾌하고 장대한 접근방법을 가지고 써 내려간 책이라면 과연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자 강효백의 대학(경희대 법학과) 졸업 이후 프로필은 모두 ‘중국’입니다. 타이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중국 베이징대와 인민대에서 강의했습니다. 이후엔 12년간 중국과 타이완에서 살며 외교관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중국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일종의 ‘중국에 관한 잡서’인 것 같습니다. 중국의 다양한 면모를 톺아보는 ‘중국 설명서’입니다. 정치와 외교전략, 경제, 사회문화, 심지어 식생활까지 모든 분야를 400p에 못 미치는 분량에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체계적이지는 않습니다. 저자 스스로 내세운 ‘앨버트로스의 조망’은 과욕이었던 듯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일관된 주장이 없습니다. 대신 다양한 얘깃거리가 넘칩니다. ‘체험에 바탕해 발로 썼다’는 말이 과장만은 아닙니다. 이게 매력입니다.

저자는 중국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오해, ‘관시(关系, 인맥)’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라는 생각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중국은 사회주의로 포장된 자본주의 개발 독재국, 관시가 아니라 서양을 넘어서는 법제 국가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한국인은 생래적 사회주의자이고, ‘배 아픈 건 잘 참아도 배고픈 건 못 참는다’는 중국인은 생래적 자본주의자라는 겁니다. 이 표현은 2002년 서울에 체류하던 중국 고위 외교관이 공식 석상에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 말을 듣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고 회고합니다. 저자는 심지어 중국인에 대해 ‘상인종(商人種)’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금 중국 땅은 온통 시장, 중국인은 모두 상인”이라고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은 외피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두 번째 오해, ‘관시의 사회’에 대해서는 전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바탕엔 ‘법가(法家)’의 전통에 뿌리내린 법제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법에 의한 통치’와 강력한 제도화의 전통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진시황은 인간을 교화시키기 위해 예나 도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엄격한 기준에 기대는 법가를 채택했습니다. 특히 국가의 조직에 관한 공법(公法)으로 대륙을 통일시켰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국가의 조직법 덕분에 내란이나 외부세력의 정복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분열은 최소화되었습니다. 진시황 이후 오늘날까지 중국의 역사를 백분율로 볼 때 통일 기간은 약 73%, 분열 기간은 약 27%라고 합니다. 개인의 이익에 관한 법인 사법(私法)을 중심으로 통일을 이룩한 로마제국이 외부의 공격으로 멸망한 뒤 계속되는 분열의 역사를 이어온 유럽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 강 교수의 시각입니다.

공법을 통해 넓은 중국 대륙을 하나로 묶고 국가를 운영해온 법가적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중국의 입법 기반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중국 법학의 주류는 입법학, 즉 제도창조학 그리고 국가시스템 디자인학, 국가경영제도학이라고 합니다. 재판을 중심으로 ‘판례’와 ‘해석’을 중시하는 한국과는 아주 다른 풍조입니다. 저자는 중국 부상의 원동력이 이러한 입법학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도화하여 강력하게 실천한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법학 분야 우수인력을 입법, 행정, 사법 순으로 투입한다고 합니다. 법학을 하면 모두가 변호사의 길로 질주하는 우리와는 정반대지요. 중국 공산당 중앙 정법위원회와 베이징 대학, 중국인민대학 등 명문대 법학원의 저명 교수진과 최고 엘리트들의 지력은 ‘좋은 법 만들기’에 집중된다고 합니다. 이를 토대로 대외무역법, 외국인투자법, 기업법, 지식재산권법, 소득세법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법제개혁을 이뤄내 개혁개방을 지원했다는 겁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은 “가난한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현대 중국에선 이것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닙니다. 덩샤오핑은 경제특구 및 외자기업의 장려와 보호를 헌법 조문으로 명문화하고 (헌법 제18조, 제32조) 합법적인 사유재산권의 불가침권을 보장했습니다 (헌법 제13조). 이 밖에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에 대한 보호와 특혜를 보장한 합자기업법(1979), 외자기업법(1986), 합작기업법(1988) 등 이른바 ‘삼자기업법’과 사유재산의 축적을 보장한 상속법(1985)을 제정 및 시행했습니다. 개혁개방 10년 동안 경제개발과 외자유치를 위한 법제화를 완료한 것입니다. 외자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이 강력하게 제도화되어 있다보니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의 출세는 외자를 얼마나 유치하였느냐에 달려 있게 되었으며 이를 위한 경쟁은 중국의 초고속 성장을 이룩하게 했다고 합니다.

‘알리페이’ 1년 만에 불법에서 합법으로

강 교수는 중국의 법제화 능력을 2003년 알리바바의 ‘온라인 결제’에 대한 발 빠른 지원 같은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해 10월 알리바바 마윈은 제 3자 지불 결제 솔루션인 ‘알리페이(Alipay, 支付宝)’를 만듭니다. 알리페이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안전 결제를 가능케 하는 온라인 간편결제 시스템이며 상품 배송기간 동안 구입대금을 가지고 있다가 구매자가 상품 수령을 확인한 후에 판매자에게 구매자금을 전해주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마윈이 알리페이를 만들었을 때 제 3자 지불결제시스템과 관련한 중국의 법령 등 제도적 장치는 완전한 공백 상태였다는 겁니다. 즉 알리페이는 법적 근거 없이 만들어진 일종의 불법 사금융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나라 국회 격인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004년 8월 28일 제3자 지불결제시스템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전자서명법’을 제정, 2005년 4월 1일부터 시행했습다. 이와 같이 기민한 중국 정부의 법제 인프라 구축이 알리바바의 강력한 경쟁상대인 미국의 이베이(eBay)를 중국에서 몰아냈고 오늘날 중국에서 원활한 창업과 효율적인 기업경영을 지원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중국에 오래 산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흥미로운 얘기들이 꽤 있습니다. 청나라 건륭제 때 만들어진 ‘만한췐시’는 324가지 요리를 사흘 동안 먹는 코스라고 합니다. 이것이 1925년 108종류로 ‘간소화’ 되어 지금도 베이징 외곽에 식당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또 중국인들이 최고로 친다는 개고기 요리 얘기까지 맛보기가 다양합니다.

이 책은 ‘발로 쓴’ 책이 틀림없습니다. 개별 소재와 소재를 잇는 체계는 부족해 보이지만 내용 하나하나는 충실합니다. 중국에 관한 어떤 인사이트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미흡합니다. 그러나 인사이트로 가기 위한 길 안내서, 그 길에서 만나는 자극제로서는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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