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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 FOOD OR WAR] “전세계 국방비의 20%를 ‘식량을 통한 평화’에 투입하자” - 호주 과학작가 줄리안 크립이 쓴 ‘식량의 서사시’

티테녹 안나 (SD)

2020.04.24

(출처: 블룸버그)

“식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 코로나19

코로나 사태엔 미덕도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본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건강과 보건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임을 절감케 했고, 수천 km 떨어진 숲의 파괴가 나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알게 했다. 말하자면 ‘건강과 안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속에 자신을 놓아보게 한다.

나는 매일 먹는다. 하루 세끼 영양과 맛을 갖춰 먹으려 하고 중간중간에 커피와 차, 쿠키와 너트를 먹는다. 식재료는 마트에 널려 있고 그것마저 귀찮다면 식당에 가면 된다. 내가 먹는 쌀과 밀과 콩, 소고기와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고 가공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당연히 손만 뻗으면 내 옆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불현듯, 그게 아니게 됐다. 식량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볍게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갑자기 심각하게 다가온다. ‘식량이란 무엇인가?’, 나의 식량을 위해 바이러스는 도시로 나왔는가?

인류 역사에서 전쟁으로 죽은 사람 보다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

호주의 저명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줄리안 크립이 2019년 출간한 ‘FOOD OR WAR’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식량의 결핍이 우리를 전쟁으로 이끌었다”는 명제로 시작한다. 그래서 ‘FOOD AND WAR’가 아니라 ‘FOOD OR WAR’로 제목을 잡은 모양이다.

책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서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이 전쟁으로 죽은 사람 보다 많았다. 1850 ~2010년 160년 동안 국가 간 전쟁 시기에 사망한 사람들의 수는 2억 명이었다. 그중 절반 가까이는 무력에 의해 죽었지만 절반을 조금 넘는 1억 500만 명은 기근으로 사망했다. 그 1억500만 명의 3분의 2는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당시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스탈린의 집단농장화가 부른
우크라이나 대기근
“1000만 명이 죽었다”

식량 위기는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고 결과이기도 했다. 무기가 되기도 했다. 30년 전쟁(1618~1648, 독일 내부 종교전쟁), 나폴레옹 전쟁 때는 전쟁의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반대로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시리아내전에서는 식량 문제가 근본 원인으로 작동했다. 스탈린 시절인 1932~1933년 일어난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식량을 무기로 사용했던 대표적인 사례이다. 강제로 시킨 집단농장화의 결과로 우크라이나 길거리에 굶어죽은 사람들이 널려있었다. 우크라이나 공식 자료에 따르면 17개월만에 우크라이나에서 700만 명,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했던 기타 지역에서 300만 명이 굶어죽었다. 태어나지 않은 자를 포함한다면 더욱 무서운 숫자다. 이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우크라이나어로 ‘홀로도모르(기근에 의한 떼죽음)’라고 부른다. 약 20여개 국은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집단살해로 인정한 바 있다. 나치 독일의 ‘굶주림 계획(hunger plan)’, 캄보디아 집단학살도 정치가 기근을 만들어 사람을 대량 학살한 사례다.

다보스 포럼의 ‘2020 글로벌 5대 리스크’
모두 식량 문제로 연결

21세기의 식량 문제는 수치만 보면 괜찮은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은 충격이 취약한 지역을 흔들게 되고, 큰 충격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류의 현재 삶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식량 확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보스포럼으로 더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의 2020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는 ‘세계 리스크 상호 연결 지도’가 있다. 상위 5대 리스크는 ‘극심한 기상이변’, ‘기후변화 대응 실패’, ‘자연재해’, ‘생태 다양성 소실’ ‘인공 자연재해’ 등이다. ‘식량 위기’라는 단어는 없다. 그러나 다섯 가지 모두가 식량위기와 직결된다. 식량 문제는 미래의 일이 아니다. 생산이나 배달 사슬에서 한 단계가 붕괴된다면 매장은 24시간 내에 텅 비어 버릴 수 있다. 영양면으로 봤을 때 전 세계 사망자의 사망원인 중 71%가 다이어트 관련 생활습관병이다. 그럼에도 세계 많은 곳에선 굶주림이 있다.

시리아내전도 가뭄과 기근이 근본 원인

21세기에도 식량 위기와 정치적 갈등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더 나아가 식량 위기 문제는 지역 문제를 벗어나 국제문제로 발전되기 쉽다.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반정부 운동으로 시작된 것은 모두 잘 아는 사실이지만 근본 원인은 식량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내전이 벌어지기 전에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수확량이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면서 사회적 긴장이 시작되었다.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고 사회적 불안은 심화되었다. 그 결과 전쟁과 기근으로부터 탈출하는 난민들이 이웃 나라와 유럽으로 향했다. 유럽의 정치 불안도 심화되었고 테러리즘은 확산되었으며 중동의 세력균형은 이란 쪽으로 기울었다. 갈등의 논리와 인과 관계는 사건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식량과 갈등의 연결고리를 예멘, 르완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남수단 사례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저자는 미래에 대한 전망도 제시한다. 식량 전쟁 혹은 식량 위기로 인한 분쟁이 벌어질 리스크가 가장 높은 지역은 남아시아(인도와 파키스탄)이다. 아프리카와 중국이 그 뒤를 잇는다.

한 사람의 한 끼 식사를 만들기 위해
물 800리터 소비

저자는 식량 공급 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을 많은 통계 수치와 다른 연구결과들을 결합해 제시한다. 세계 인구의 식량과 에너지 요구량이 1950년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농업은 지속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70년 사이에 세계 인구 1인당 식량 소비, 에너지 소비량이 대폭 늘었다. 한 사람의 한 끼 식사는 토양 5~8킬로그램, 물 800 리터를 소비하는 것에 해당된다. 현재의 농식품 시스템은 토양과 물을 오염시키고 자원을 비합리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기후 변화는 이 과정을 더 심화시킨다. 홍수, 허리케인, 태풍의 빈도가 증가하여 농업과 식품에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홍수와 태풍 증가(1960-2015) (출처: Emergency Events Database, 2016)

유엔 식량농업기구(UN FAO)에 따르면 2050년대에 100억 명까지 늘어날 인류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식량 생산이 60%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서는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도시를 유지시키기 위한 생활용수, 산업용수의 급증을 의미한다. 결국 농업용수는 줄게 되고 식량 생산이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1/3로 줄어들 수 있다. 음식 쓰레기는 더욱더 충격적인 현실이다. 8억 명이 굶는 세상에서 생산-보관-운송-배분-요리-소비 과정에서 식재료의 30~50%가 낭비된다. 30%는 연간 13억 톤에 달한다. 이는 20~30억 명을 먹일 수 있는 양에 해당된다. 결국 인류는 증가하는 식량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줄리안 크립은 이 대목에서 식량은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역별 연간 1 인당 세계 음식 폐기물(킬로그램) (출처: FAO 2011)
심각한 훼손을 입고 있는 아마존 열대우림 (출처: 로이터)

인간은 한 평생 토양 750톤을 침식시킨다

줄리안 크립은 기후변화, 자원 고갈, 식량의 지속불가능성이 특정한 누군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한 사람이 평생 소비하는 식량 자원을 계산했다. 계산에 따르면 현대 인간은 평생 9만 9720톤의 식수를 마시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데 쓴다. 이는 올림픽 규모 수영장 4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또 인간은 일생 동안 토양의 상부 750톤을 침식시키며, 금속을 포함한 재료 720톤, 에너지 800억 줄(joule·체중 50kg인 사람이 20cm 움직이는 데 쓰는 운동에너지를 뜻하는 에너지 단위)을 쓴다. 또 이산화탄소 288톤과 독성화학물질 320kg을 배출한다. 음식 13.4톤을 낭비하고 숲 800평방미터를 파괴한다. 세계 부유층 10%가 남기는 탄소발자국은 빈곤층 50%의 탄소발자국 보다 5배 많다.

줄리안 크립은 결국 인류의 미래는 지속가능한 식량 시스템 구축에 있다고 주장한다. 식량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지역갈등과 더 나아가 국제 긴장 및 분쟁을 방지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크립은 6가지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중 흥미로운 3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세계 국방비의 20%(3400억 달러)를 줄여 식량 문제 해결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식량 안보가 국방과 관련되어 있고, 식량이 전략적 자원이라는 인식의 강화가 필요하다. 크립에 따르면 3400억 달러는 인류가 쓰는 전쟁비용의 2.5%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투자만으로도 미래세대를 위한 중요한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 아쿠아포닉스 / 아래 - 스마트팜 (출처: 로봇신문)

식량위기 막기 위해서는
‘도시 재설계’ 필요

두 번째 조언은 도시 재설계다. 현대 문명의 상징인 대도시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곳이다. 도시에서 소비하는 음식은 평균 2000km 떨어진 곳에서 운송된다. 낭비를 줄이는 길은 도시에서 버려지는 영양과 물을 재활용해 다시 지역 내에서 생산으로 이어지게 하는 재설계밖에 없다. 옥상정원, 아쿠아포닉스(물고기 양식과 채소 수경재배를 결합한 생산 방식) 기술을 이용한 도시 농장, 생물 배양 기술로 식품 생산 등은 이미 가능하다. 가까운 미래에 더 지속가능한 기술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신재생에너지 혁명처럼 신재생 식량 혁명도 언젠가 우리의 생활을 바꿀 것이다.

세 번째 조언은 현재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 토지면적을 현재 15%에서 50%로 늘리자는 것이다. 크립은 이 땅을 단지 야생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 관리를 농민과 원주민들에게 맡기자고 제안한다. 이익 메커니즘 속에서 움직이는 대형 농식품 기업보다는 지역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토지와 자원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깊으며 다양한 농업 방식을 활용하는 농민과 원주민들에게 초지 회복, 재조림, 토지 재생을 위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지구를 지키는 평화 유지자들이 된다. 다른 조언들은 생태농업, 여성 역량 강화 등과 관련된 것들이다.

1990년대가 ‘인터넷의 시대’였다면
지금 우리는 ‘식량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이 책은 식량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한 문제이면서도 각 개인이 어떤 음식을 선택하느냐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 내용이 다소 과장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식량 문제의 시급성 및 식량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는 1990년대가 ‘인터넷의 시대’였다면 지금 우리는 ‘식량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 리스크 연결 지도 (출처: World Economic Forum, The Global Risk Report, 2020)

코로나19는 아프리카 등 일부 초저개발국의 문제였던 식량 문제를 다시 불러들였다. 작년 세계 평균 식량 자급률은 101%였다. 올해도 예상 곡물 생산량은 27억 2060만 톤으로 예상 소비량(27억 2150만 톤)과 비슷하다. 8억 톤이 넘는 재고도 있다. 그런데도 굶주림 위기에 놓인 사람들은 항상 있다. 유엔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작년에 세계적으로 1억 3500만 명이 아사 위기였다. 올해는 2억 6500만 명으로 두 배 가량 늘었다. 인도나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식량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아리프 후사인 WFP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전례 없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했다.

지금 닥친 문제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유통망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초과생산국이 운송망에 문제가 생겨 수출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브라질·아르헨티나), 아니면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비해 수출을 봉쇄하기(러시아·베트남)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막시모 토레로 컬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4월과 5월 사이에 식량 공급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문명의 본질 돌아보게 하는 책

한국은 식량 자급률이 47%,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3%에 불과하다. 쌀 재고가 넉넉하기 때문에 밥을 굶는 일은 없겠지만 밀이나 콩 등 수입에 의존하는 곡물의 글로벌 유통망에 문제가 생기면 값이 폭등하게 된다. 세계적인 식량대란이 일었던 2008년 그런 일이 있었다. 톤당 100달러대였던 밀과 콩의 국제 가격이 400달러와 500달러대로 치솟았다.

만약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이런 것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보듯이 환경훼손과 온난화에서 비롯된 지구적 차원의 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 식량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다면? 그런 시기에 갈등이 발생하고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줄리안 크립의 ‘FOOD OR WAR’은 식량과 전쟁의 대비를 통해 우리 문명의 지속불가능성, 특히 식량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국방비 20%를 줄여 식량에 투입하자는 제안은 당장 실현 불가능하겠지만 우리 문명의 본질을 짚어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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