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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본질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에 있다: 태재 연구원이 뽑은 CES 2024 ‘주목할 만한 시선’

윤준영 선임연구원 · 김보경 연구원 · 김우진 연구원 (태재미래전략연구원)

2024.02.29

CES 2024에서 각국 스타트업이 부스를 차린 베니션 엑스포 ‘유레카파크’의 전경 (사진: 김보경)

‘주목할 만한 시선’은 칸 영화제의 비경쟁 부문의 하나로, 세계 영화의 다양한 흐름을 포착하고 영화제의 보수적 성격을 상쇄하기 위해 1988년 도입됐다. 독특한 촬영 기법과 혁신적인 내용 전개로 전통적인 영화 제작방식에 도전하고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작품에 수여해 영화계 내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CES 2024를 참관하러 떠난 한반도 미래산업팀 연구원들은 태재만의 ‘주목할 만한 시선’을 발굴하고자 1,200여 개의 스타트업 전시관이 모인 베네치안 엑스포의 유레카 파크에서만 꼬박 이틀을 보냈다. 이곳에서 찾은 담대한 비전과 남다른 솔루션을 제시한 제품은 물론 3,000여 개의 출품작 중 단 1%에게만 주어지는 최고혁신상 가운데 분야별(▲모빌리티 ▲디지털 헬스케어·웰니스 ▲사회적 지속가능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푸드·애그테크 ▲리빙) 최고를 선정해 소개하고자 한다.

[모빌리티] 미래 첨단 기술 아닌 당장 쓸 수 있는 기술에 주목

불과 얼마 전까지 CES는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모빌리티 기술 볼거리를 자랑했다. 그러나 올해는 언제 실현될지 모를 첨단 기술의 과시보다는 즉각 실현 가능하고 시장성이 분명한 혁신으로 선회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① 완전 자율주행차 대신 완전 자율주행 주차로봇
이러한 맥락에서 운전자 개입 없는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도로 인프라의 획기적 개선 없이 적용하기 어려운) 승용차 대신 트럭이나 화물차와 같은 상용차나 농기계, 건설기계와 같은 특수목적 차량에 접목시키는 사례가 다수 관찰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입증하듯, 국내 주요 자동차 부품사로 손꼽히는 HL만도의 자율주행 주차로봇 Parkie가 모빌리티 부문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주변 장애물, 주행로, 타이어, 번호판 등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바퀴 사이 거리와 차량 무게 중심까지 스스로 판단해 주차한다. 수평이동과 제자리 회전이 가능해 운전자가 주차할 때보다 주차 면적을 30% 감소할 수 있으며, 본체 외 레일이나 체인 등의 보조 설비가 불필요해 기계식 주차 설비 대비 20%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지상고가 낮은 스포츠카부터 무거운 SUV까지 모든 차종을 운반할 수 있는 HL만도의 Parkie (사진: 윤준영)

② 플라잉 카의 입체적 이동이 보여준 중대형 화물 운송의 미래
항공 모빌리티도 안전성과 실용성,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한 대안을 제시했다. 일례로,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Xpeng의 항공 모빌리티 자회사 AeroHT는 일반적인 자동차 위에 거대 로터(rotor)를 탑재해 필요할 때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플라잉 카 콘셉트를 공개했다. 양산을 위한 최종형으로, 지상 주행 시엔 로터를 루프와 상단 패널 사이에 집어넣는 구조다. 육상 교통과 공중 교통을 연계함으로써 도로 교통의 틀에 구속되지 않는 입체적 이동으로 말미암아, 화물이 적재된 트럭을 직접 옮겨 경로 최적화 물류도 실현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드론이 갖고 있는 중대형 화물 운송의 제약을 극복할 대안을 보여준 것이다.

땅 위를 달리는 차에서 전기수직이착륙 가능한 AeroHT의 eVTOL Flying Car (사진: 윤준영)

[디지털 헬스케어·웰니스] 모두가 AI 외칠 때, 사람을 향한 의미 있는 혁신

최근 ‘건강’의 개념이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행복까지 포괄하는 ‘웰니스’로 확장되면서 헬스케어 분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 서비스 대상이 환자에서 일반 수요자로 변화했고, 서비스 형태 또한 사후적∙ 수동적 치료에서 사전예방적∙능동적 건강 관리로 진화했다. 이번 CES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입증하듯 사람 중심의 기술, 사용자를 배려하는 세밀한 기술들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일상에서 건강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해법들이 소개되었다.

① 20분의 1 가격으로 만들어가는 ‘의수 혁신’
국내 스타트업 Mand.ro는 부분 손 절단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로봇 손가락 의수 Mark 7D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손가락 길이, 악력, 구동 속도까지 맞춤 조율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가격 혁신까지 이뤄내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일반적으로 손가락 하나를 제작하는데 1,000만 원이 소요되는 반면, 이 제품은 자체 제작한 반영구적인 브러시리스 모터와 감속기를 사용함으로써 가격을 50만 원으로 낮췄다. 상지절단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고가의 의수 없이도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의수 혁신을 이뤄냈다.

손가락 길이, 악력, 속도 조절이 가능한 만드로의 로봇 손가락 의수 Mand.ro의 Mark 7D (사진: 김보경)

② 당신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보행보조 웨어러블 로봇
국내 스타트업 WIRobotics웨어러블 로봇 WIM은 로보틱스 및 엑세서빌리티 & 에이징테크 부문에서 기술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기존 웨어러블 로봇이 주로 산업과 의료 분야에서 활용되었던 것과 달리, WIM은 일상 생활에서 보행을 지원하는 신개념 웨어러블 로봇이다. 무게는 1.4kg로 탈부착이 간편하고, 보행은 물론 근력 강화까지 선택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 노화와 질병으로 근력이 약해진 사용자부터 트레킹, 가벼운 조깅을 즐기는 사용자까지 전 연령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걷기’는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한 첫 번째 동작인 만큼, 그동안 보행이 어려워 세상과 단절되었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동행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용 모빌리티로 활용이 가능한 WIRobotics의 보행보조 웨어러블 로봇 WIM (사진: 김보경)

[사회적 지속가능성] 선∙후천적 장애부터 노화, 여성 건강, 채용의 공정성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노력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올해 CES가 모든 산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꼽은 세 가지 AI, 지속가능성, 포용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모든 개인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원, 기회, 지원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양성과 형평성의 증진 및 삶의 질 개선이 포함된다. 선∙후천적 장애인을 위한 적응형 기기에서부터 그간 도외시되었던 여성 건강 관리 기기, 공정한 채용 솔루션 등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견인할 제품이 다수 출현했다.

① 후천적 장애 및 노화에 의한 사회적 고립 방지
국내 IT 스타트업 ONECOM버튼식 초소형 휴대용 키보드 FINTIN V1을 개발해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점자를 익히기 어려워 고립되기 쉬운 후천적 시각 장애인의 디지털 접근성을 크게 개선한 공로다. 실제로 시각 장애의 90% 이상이 후천적으로 발생한다는 데 착안해 개발된 만큼, 기존에 사용하던 자판 배열인 쿼티(QWERTY)를 기반으로 해 사용법을 익히는 데는 단 1시간이면 충분하다. 블루투스로 스마트폰에 연결 후 스마트폰의 자체 음성 지원 모드와 연동하여 입력한 문자를 들으며 오타를 바로잡는 방식이다. 시각 장애인의 소통에 필수품이므로 배터리 소모에 취약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한번 충전하면 4일 지속된다.

ONECOM의 한 손에 들어오는 초소형 키보드 FINTIN V1(가장 왼쪽 제품) (사진: 윤준영)

② 부상하는 펨테크(Femtech) = Female(여성) + 기술(Tech)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Amira Health Inc.폐경기 여성의 수면장애를 돕는 Terra Sleep 시스템을 공개했다. AI와 센서 기반의 스마트 팔찌를 통해 열감을 사전 예측하여, 이와 연동된 급속 냉각 매트리스를 활성화시켜 편안한 수면 환경을 제공하는 원리다. 또, 미국의 펨테크 스타트업 Elidah는 임산부 및 갱년기 여성이 흔히 겪는 요실금을 개선하는 겔 패드형 치료제 Elitone을 선보였다. 골반과 질을 지지하는 골반저근(pelvic floor)으로 전류를 내보내는 겔을 통해 과민성 방광을 진정시키는 메커니즘으로, 3명 중 1명 꼴의 개선 효과가 있다.

Elidah의 속옷 위에 부착하는 겔 패드형 요실금 치료제 Elitone (사진: 윤준영)

③ 공정한 채용 기회의 보장
프랑스 채용 솔루션 스타트업 Hirely AI는 채용 과정에서 무의적으로 발생하는 편견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구직자에게는 보람 있는 경력을 제공하고 고용주에게는 최적의 인재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찾아 매칭하는 오픈AI의 비차별적 언어 모델 기반 채용 솔루션을 선보였다. 직무에 가장 적합한 후보를 선별하기 위한 맞춤 질의를 생성해 양측 모두 훈련이 되는 기능이 포함돼 면접에 드는 시간과 비용, 잠재적 실패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환경적 지속가능성] 대규모 중앙집중식 인프라로부터 자립∙분산형 소규모 인프라로의 전환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물과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환경에 큰 부담을 주는 중앙집중식의 대규모 인프라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번 CES에서는 발전소나 댐, 상하수도 시설 없이도 물과 전력을 공급하고 처리하는 대안들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① 우리집 창문은 태양광 발전소
일본 에너지 스타트업 InQs태양광 필름을 삽입한 투명창 SQPV(Solar Quartz Photovoltaic) Glass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빛으로도 전력을 생성하는 광전지 소자를 사용해 흐린 날은 물론 실내에서도 전력 생성이 가능하다.

실내에서 발생하는 빛으로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InQs의 SQPV Glass (사진: 김우진)

② 수도 설치 없이 물을 최대 1,000번 재사용하는 방법
일본 스타트업 WOTA는 사막이나 재해 상황처럼 수도가 없는 곳에서도 물을 최대 1,000번까지 정화해 쓸 수 있는 휴대용 워터박스 WOTA Solution을 선보였다. 독자적인 필터 시스템으로 사용한 물의 98%를 재활용할 수 있으며, 빗물이나 강물 등 천연 담수도 정수 후 사용 가능하다. 샤워 부스는 성인 두 명이면 15분 내 설치 가능하며 100L로 100명이(1회 샤워에 50L 소요) 샤워할 수 있으며, 손 씻기 인프라는 20L로 500회(1회 손 씻기에 1L 소요) 사용 가능하다.

공간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물 인프라 WOTA Solution (사진: 김우진)

[푸드·애그테크] 지속가능한 미래 식탁을 위한 혁신 기술

최근 인구 증가, 기후 위기 등 전 지구적 위험이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푸드·애그테크 기술이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푸드테크(Foodtech)는 생산, 유통, 소비 등 푸드 밸류체인 전반에 혁신 기술이 접목된 신산업을 의미하며, 애그테크(AgTech)는 푸드테크에 포괄되는 개념으로 농업에 첨단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산업을 의미한다. 이번 CES에서도 인류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동시에 생각하는 푸드·애그테크 기술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① 푸른 사막을 꿈꾸는 스마트팜의 가벼운 변신
국내 스타트업 Midbar는 ‘광야에 꽃을 피우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세계 최초 공기주입식 스마트팜 모듈 Airfarm을 출품했다. 사막지역에서 식량 생산을 가능케하는 이 기술은 인간안보 부문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Airfarm은 철제 프레임이 없어 부피 축소가 자유로워 어디서나 손쉽게 식량 생산이 가능하다. 또한 대기 중의 수분을 물로 바꿔 재활용하고 미스트 방식으로 식물을 재배해 기존 토경재배 대비 95%의 농업 용수를 절약할 수 있다. 이 같은 지속가능한 농업 솔루션은 글로벌 식량안보 위기뿐만 아니라 우주 식량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적은 양의 물로 작물 재배가 가능한 Midbar의 Airfarm (사진: 김보경)

② 식은 음식도 다시 보자, 배낭 매고 요리하는 세상
식량 안보를 해결하는 기술 외에도 이번 CES에서는 다양한 식품 산업에 혁신 기술을 접목시켜 더욱 편리해진 일상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섬유회사 Willtex휴대용 패브릭 전자레인지 가방 Willcook를 선보여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이 제품은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 온도 제어 기능이 탑재되었으며, 10분이면 90도, 20분이면 130도까지 가열이 가능하다. 무게도 300g으로(가방 160g, 배터리 120g)으로 업계에서 가장 가벼운 전자레인지다. 또한 불을 사용하지 않아 이산화탄소 배출도 없어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다.

가볍고 빠른 단열이 가능한 Willtex의 휴대용 전자레인지 가방 Willcook (사진: 김보경)

[리빙] 더 풍부한 경험 그리고 더 편리한 생활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한 리빙 분야에서는 기존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일상을 보다 편리하고 보다 풍부한 경험으로 채우는 솔루션들이 등장했다.

① 햅틱으로 연결된 현실과 가상 세계
미국의 스타트업 Affernce가 선보인 장갑 형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Phantom은 XR(확장현실) 환경에서 인공적인 촉감을 느끼게 해준다. 시∙청각을 제외한 오감 구현의 어려움으로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현실과 가상 세계 사이의 간극을 좁힌 점을 인정받아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미세 전류를 신경에 직접 전달하여 실제 촉감을 느끼는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원리이기에 진동에 기반한 기존 햅틱 기술과는 차별화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점점 발전하는 햅틱 기술과 함께라면 가상 세계에서 악수하고, 가상 쇼핑몰에서 제품을 만져보며 고민하는 것도 꿈 같은 일이 아닐 것이다.

컨트롤러 타입이 아니라 웨어러블 타입이기에 보다 자연스러운 촉감 구현이 가능한 Afference의 Phantom (사진: 김우진)

② AI가 추천해주는 오늘의 코디
삼성 C-Lab 산하 스타트업 StyleBot은 ‘오늘은 뭐 입지?’와 같은 고민을 해결해주는 AI 기반 개인 맞춤형 코디 서비스를 선보였다. 본인의 의류를 모바일 앱에 저장해두면 날씨, 취향, 유행 등을 반영해 그날의 코디를 추천해준다. 당초 B2B 서비스로 기획되어 스마트 미러 구매 시, 별도의 추가 비용없이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패션 테러리스트들도 트렌디한 패션 피플로 당당히 거리를 돌아다닐 날이 머지 않았다.

스마트 미러가 있다면 더 편하게 StyleBot을 활용할 수 있다. (사진: 김우진)

혁신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에 있다’는 본질 잊지 말아야

CES 2024에서 주목한 6개 분야 트렌드와 담대한 비전과 남다른 솔루션을 제시한 최고혁신상 및 스타트업을 자체적으로 선별해 살펴보았다. 모빌리티, 디지털 헬스케어∙웰니스, 사회적 지속가능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푸드∙애그테크, 리빙 등 전 분야에 걸쳐 발견된 공통된 메시지는 바로, 혁신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가치에서 비롯된다는 혁신의 본질이다. 이는 새로운 세계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공헌할 미래 기술과 미래 산업을 고민하고 있는 태재의 방향성과 정확히 맞닿아있다. 일견 디지털이 이끄는 듯 보이는 사회 변혁의 파고 속에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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