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여시재와 함께 해주십시오. 회원가입으로 여시재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는 피지컬 AI 시대, 새로운 노동과 새로운 분배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 CES 2026, 피지컬 AI가 바꿔가는 노동과 삶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는 1년 간의 혁신기술 트랜드를 확인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ICT 융합전시회다. 이번에는 지난 1월 6~9일 개최되었다. 그 전 이틀 동안 미디어데이가 열려 굵직한 기조연설과 강연이 이어졌다. 작년 CES의 키워드는 첨단 기술의 바다에 뛰어든다는 의미를 담은 ‘다이브 인(DIVE IN)’이었고, 뛰어들어야 할 기술의 바다는 AI, 에너지,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등이었다. AI를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있는 양상이었다. 올해는 그것이 단 한가지, ‘피지컬 AI’에 집중됐다. 현대차의 드라마틱한 주가 급등이 그 위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태재는 올해도 2명의 연구원이 CES 현장의 열기를 직접 경험했다. CES에 이어서는 바로 실리콘밸리로 이동해 신기술이 바꿔가는 연구 현장과 함께 심각한 양극화 상황도 둘러봤다. 피지컬 AI는 공장과 노동의 모습은 물론 복지와 연금, 인간 네트워크 등 인간의 삶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태재는 앞으로 기술이 사회구조와 인간의 삶에 미칠 영향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혁명적 변화는 필연, 저항하는 길은 없다
피지컬 AI는 공장에서는 생산 로봇으로, 거리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스마트 통제시스템으로, 집에서는 자율 가전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화할 지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혁명적 변화는 필연이다. 거기에 저항하는 길은 없다. 하지만 준비하고 대비할 수는 있고, 이게 국가와 사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노동은 생존 조건이었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고, 일할 수 없으면 사회에서 밀려났다. 근대 이후 노동은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은 “당신은 누구입니까?”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만약 기계가 대부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대체로 먼 미래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이번 라스베이거스와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그 미래가 이제 현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1년만에 확연히 달라진 CES 현장
1년 전 CES에서 AI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안에 머물러 있었다. 챗봇이 더 똑똑해졌다는 것, 코딩을 대신해준다는 것, 문서를 요약해준다는 것. 모두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AI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들었는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체감하기 어려웠다.
이번 CES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피지컬 AI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기계가 이제 현실 세계에서 지각하고, 추론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전시장 곳곳에서 그 증거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현대자동차그룹 부스에서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시연되고 있었다. 아틀라스는 관절과 촉각 감지 손을 장착하고 산업 현장에서의 작업을 시연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버트 플레이터 대표는 더 이상 보여주기식 곡예가 아니라 건설 현장, 물류 창고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로봇을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아틀라스를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연간 3만 대의 로봇을 생산하는 로봇 공장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전자는 ‘제로 레이버 홈’(zero-labor home)이라는 비전을 내세우며 가정용 로봇 클로이드를 공개했다. 이 로봇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오븐에 크로아상을 넣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마른 빨래를 개어 정리한다. LG전자 측은 이 로봇이 주당 약 10시간의 가사 노동을 대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시간이면 파트타임 일자리 하나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AMD는 이탈리아 로봇 기업과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진 원(Gene.01)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2026년 말부터 조선소 등 산업 현장에 배치될 예정이다. 맥킨지는 범용 로봇 시장이 2040년까지 3,7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주요 활용 분야로 물류 창고, 경량 제조업, 소매업, 농업, 의료를 꼽았다.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즈는 저서 『기술 혁명과 금융 자본(2002)』에서 기술 혁명이 두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설치 국면’이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투자가 몰리고, 버블이 형성되고,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다. 두 번째는 ‘배치 국면’이다. 기술이 충분히 성숙해져서 여러 산업으로 퍼져나가고,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AI의 노동대체가 현실이 되는 원년
2025년까지의 AI는 설치 국면에 있었다. 기술 자체의 발전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고, GPT가 몇번째 버전이 나왔는지, 어떤 벤치마크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가 뉴스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2026년 CES에서 목격한 것은 배치 국면의 시작이었다. AI가 로봇의 두뇌가 되어 공장에 투입되고, 가정에 들어오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지만 과대평가되고 있다. 2010년의 사물인터넷 열풍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도 한때 거품이었지만 세상의 혈관이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LG의 빨래 개는 로봇이 수건 한 장을 개는 데 30초가 걸렸다. 아직 인간보다 느리다. 그러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노동의 대체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 시작한 원년이라 할 수 있다.
기술적 완성도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관람객들의 반응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로봇들을 보면 “무섭다”, “불안하다”는 반응이 먼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들이 웃으면서 다가갔다. 스팟을 보며 “강아지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로봇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프레이와 오스본은 2017년 연구에서 미국 일자리의 47%가 20년 내에 자동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추정했다. MIT의 아세모글루와 레스트레포는 2019년 연구에서 자동화의 두 가지 효과를 구분했다. 하나는 ‘대체 효과’로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창출 효과’로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과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두 효과는 대체로 균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유발 하라리는 AI 시대에 “무용 계급”이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적으로 쓸모없어진 사람들이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대응은 재교육, 새로운 일자리 창출, 사회 안전망 강화 등이다. 쓸모없어진 사람들을 다시 쓸모 있게 만들자는 접근이다. 그러나 다른 접근도 가능하다.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이번 출장 중 UKF 스타트업 서밋의 패널 토론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토론에서 나눈 핵심 논의는 이것이었다. 노동이 없어지는 시기를 거쳐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생길 것이다. 그 사이에는 대량 실업과 혼란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분배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
일론 머스크나 샘 알트먼과 같은 이 시대 기술혁신을 이끄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그들이 책임까지 지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기술변화가 불러오는 사회적 변화는 항상 예상을 뛰어넘었다.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이 획기적일수록 정치와 사회적 협상도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탈노동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질문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목격한 것은 단순한 기술 전시나 산업 트렌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을 전제로 설계되어 온 사회가 더 이상 그 전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의 초입이었다. AI와 로봇은 이제 가능성의 영역을 넘어 실제 현장에 배치되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우리가 제도와 가치관을 조정하는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얼마나 사라질 것인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노동이 더 이상 보편적 조건이 아닐 때, 사회는 사람의 가치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생산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가격으로 평가해 왔다. 그러나 생산이 기계로 이전되는 사회에서 이 기준은 필연적으로 다수의 무수한 사람들을 탈락자로 만든다.
CES 2026은 그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탈노동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과제는 기술의 진보를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그 진보와 함께 살아갈 사회의 원리를 새로 설계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탈노동 시대의 진짜 출발점일 것이다.
< 저작권자 ©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