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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브리프]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의 인식과 입장

이상준, 서동주

2017.06.15

프로젝트: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 공동기획 - 세계 싱크탱크 동향분석
제목: 각국의 한반도 인식 (4) 러시아 -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의 인식과 입장
저자: 이상준 (국민대), 서동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No.2017-26


여시재는 국내 5대 협력연구기관과 공동기획으로 세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현안과 주요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및 유럽 국가들이 현재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이다. 한반도는 주변국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각국에 있어 한반도와 관련된 중심 문제는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나아가 새로운 한국 정부에 대해 각국에서는 어떠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주요 현안 및 관련 정책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부활한 강대국 러시아 : 세계전략 연장선에의 한반도

러시아전략문제연구소(RISS)의 미하일 프라드코프(Fradkov) 소장은 5월 9일 한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논평을 홈페이지(www.riss.ru)에 게재하였다. 프라드코프 소장은 한국 대통령의 선거를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하였는데, 하나는 한국 국민들이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 대화, 평화적, 외교적 해법을 지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드 배치와 비용 분담 요구, FTA 개정 논의 등 미국의 對韓 정책에 異見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러시아전략문제연구소는 크렘린과 연계된 전략 싱크탱크로서 러시아 대외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연구기관이다. 특히 총리와 해외정보부장을 역임했고, 푸틴 대통령과도 직접 면담하는 인물로서 프라드코프 소장의 위와 같은 평가는 러시아 나름대로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 정도와 한반도 현안에 대한 인식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선거 직후 푸틴 대통령은 한국의 신정부 출범과 관련하여 5월 10일에는 축전을, 1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하였으며 이례적으로 대러 특사단과 직접 접견할 것임도 약속하였다. 이전과 달리 러시아 정부는 한국 선거 결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신정부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과거 러시아는 정책적 정합성 측면에서 한국의 보수정부보다는 진보정부를 더 선호하였는데 이러한 점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양국 간 극동시베리아지역 개발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장차 가스관 건설, 철도망 연결도 진전시켜 나갈 것임을 밝히면서 러시아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러시아는 한반도 이슈를 다른 지역 외교안보 현안과 비교하여 후순위로 두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직면하고 있는 냉정한 국제정세의 현실로 인한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자인 미국과 유럽에 외교역량을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소련 해제 직후 옐친은 서방과 협력을 선호하였지만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는 냉전 이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강대국 간 합의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서방에 불만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반도 병합 이후 G8에서 축출되고 제재가 시작됨에 따라 냉전 이후 서방과 최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러 관계의 개선을 기대하고 있고 제재 해제 여부에도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러시아 커넥션의 향배가 중요한 관심사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미·러 관계 개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러 뿐 아니라 중·러, 러·일관계의 재설정도 중요한 사항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편 미국이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면서 시리아 내전과 중동질서 향배는 러시아의 중동 진출과 관련되어 있어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게 가장 중요한 외교 대상은 소연방 시절 같은 나라였던 독립국가연합(CIS)이다. 이들 나라들과는 CIS 정상회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집단안보조약 등을 통해 영향력을 지속시키고 지역 통합을 이루려 애쓰고 있다. 이와 같은 행보는 러시아가 유라시아 공간의 통합과 협력 공간 확대의 주역이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을 다시 통합하게 되고 통합에 참여하는 대상국을 구소련 영토 이전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하면서 이 지역과 이웃하고 있는 유럽, 중동, 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참여하고 있는 상하이 협력기구(SCO)에 인도와 파키스탄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러·중 관계는 1996년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맺은 이후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푸틴 대통령은 올 5월 14-15일 중국에서 열린 一帶一路 정상포럼에 주빈급으로 대우받으며 참석하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중·러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공고함을 대내외에 과시하였다. 이로써 역내 질서 재편의 움직임 속에 미일동맹 강화에 대응하는 세력균형 구축의 일환으로 러시아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 있다.

미국 및 EU와 갈등이 커지면서 최근 러시아는 동북아·한반도를 유라시아 지역의 한 축이자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시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북아지역을 ① 세력균형의 유라시아 연대망 구축, ② 지경학적 협력과 투자 유인, ③ 포괄적 외교 수단으로서 에너지 자원 활용 전략의 대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과거 옐친과 달리 푸틴은 남북한 모두와 수교를 한 국가로서 외향적으로 균형 접근 및 등거리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정책은 세계전략, 유라시아전략, 아시아태평양, 동북아로 이어지는 일련의 외교안보 추진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고 있다.

현재 푸틴정부는 ‘실용적 신전방위 강대국 노선’의 대외정책 기조를 견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몰락했던 러시아가 아니라 강대국으로 부활했다는 인식을 갖고 보다 적극적이며 공세적으로 국제현안에 개입하는 등 국익 증진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포브스(Forbes)지가 2013년부터 작년까지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푸틴대통령을 선정한 것은 러시아의 대외정책이 일정 정도 국제사회에 영향을 끼친 결과이다. 실제 동 기간 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내전에의 군사적 개입, 이란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의 주도적 역할, IS 등 국제테러리즘과의 전쟁 수행 등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과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14년 3월 크림반도 병합 이후에는 서방측의 대러 제재 상황과 맞물려 소위 ‘푸틴독트린’을 내세우며 외교적 난관을 돌파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은 유럽 쪽에 치우쳤던 외교적 관심도 넓혀, 극동시베리아 지역을 보다 강조하는 ‘新동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판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인 셈이다. 내각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한 것은 물론이고 2012년 블라디보스톡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매년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주관하고 있는 ‘동방경제포럼’은 푸틴의 극동개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행사가 되고 있다. 2016년 9월에 개최된 동방경제포럼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하는 등 규모와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과 발전에 대한 푸틴정부의 높은 관심도와 지원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대외정책 목표와 관심사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과 대외정책 목표를 단순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요약하자면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평화롭고 안정적인 한반도 안보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두고 있다. 또한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서 북핵문제, 사드 배치, 평화체제 구축 등을 포함해 한반도 안보 현안의 당자사로서의 참여와 영향력 제고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아직까지도 러시아가 포함될 수 있는 6자회담의 유효성을 강조하고 이의 복원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가 6자 회담 형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아직까지 아태지역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지위가 역내 다른 강대국과 비교할 때 약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6자회담 형식은 동북아지역 저비용 고효율 개입구조이기에 유용한 수단이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둘째, 남·북·러 3각 경협 실현과 한·러 경협 증진 및 극동개발 투자 유치, 셋째,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에서의 러시아 역할 지속 및 강화, 넷째,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확산 저지, 다섯째, 남북한의 反러시아화 방지 및 한반도에의 영향력 제고 등이다. 또한 군사적 측면에서 한국내 사드(THAAD) 배치에 반대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러시아는 ① 북한의 핵보유 불용, ② 한반도 비핵화 지지, ③ 군사적 해법 불가 및 정치적·외교적 해법의 강조, ④ 조건 없는 6자회담의 재개, ⑤ 북한과의 선린우호관계 발전 도모하 북한의 핵 포기 결정 유인 등을 내세우고 있다. 전체적으로 러시아는 한반도와 관련하여 남북한과 '동시에'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는 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러시아의 對남북한 균형 접근 및 등거리 정책도 변함없이 지속해 나가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외교적 입장은 미·중·일 여타국과 비교해 공통점도 있지만 러시아 고유의 특성도 담고 있다. 먼저 러시아는 역내 안보현안의 당자사로서 소외·배제되지 않고 참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과거 4자회담에서 소외된 경험을 외교적 실패 사례로 되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러시아는 한반도의 문제를 세계질서,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연장선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미일동맹에 대응하는 다른 축으로서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심화·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체제 붕괴가 아닌 안정 유지에 중점을 두는 동시에 극동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환경을 만드는데도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체제 출범 초기에 주변국이 북한 지도부 체제를 흔드는데 나서지 말기를 강조하는 등 북한 지도부의 안보 불안 인식을 염두에 두고 협상을 통한 국면 해결 방식을 제시한 바도 있었다. 이밖에 러시아는 남북한 균형 접근, 등거리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남북한을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략을 구사하는데도 유리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러 수교 직후 서방과의 관계와 연동하여 친한국 일변도의 외교 추진과 실망감에 따른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전략적 중간자의 입장에서 남북 간 대립, 긴장을 우려하고 대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실험,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에 대해서는 양비론적 입장을 견지해 러시아의 존재감과 전략적 운신의 폭을 넓히려고 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런 가운데서도 ‘통일한국’ 출현에 긍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성격 면에서 ‘비핵·비동맹·중립의 통일한국’ 출현을 선호하고 있다. 통일 방식에 대해 러시아는 평화공존의 원칙하에 남북한 협상을 통한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즉 러시아는 한반도의 평화적, 민주적, 자주적 통일을 지지하고, 통일의 과정이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에 따라 평화적·단계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통일은 당연한 과정이지만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양측의 이익을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한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끝으로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개발 성공을 통해 중국의 중앙아, 극동지역 영향력 확대와 부상을 경계하는 한편, 남북을 함께 엮는 남·북·러 3각 경협을 성사시키는데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즉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조성·활용해 남·북·러 3각 경협의 실현 등 경제적 실익을 도모하려는 정책 의도도 여전히 갖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 핵실험 이후 대북 제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끝까지 예외조항을 넣어 관철시켰던 것이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이었다. 지금 러시아는 한국의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의 잠정 중단 등 대북 제재의 여파로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 사안은 현재 한러 관계 발전의 잠정적 장애요인으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러시아 외교부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국제관계위원회(RIAC)의 안드레이 코르투노프(Kortunov) 박사는 러시아는 한반도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중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다자적 접근 방식의 지지로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어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며 6자회담이 그러한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대신 다자적 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평화협정도 하나의 해결방식이며 북핵 프로그램을 ‘한반도 비핵화’와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 셋째, 개발의제와 안보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남북한을 연결시키는 에너지, 교통, 농업 등 다자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정치적인 이유로 진행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장기적으로 정치적 위험을 오히려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러 경협 인식

러시아가 한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러시아의 세계전략, 유라시아 전략, 아시아태평양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아태지역 진출과 극동개발은 이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아태지역으로 수출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국가발전에 필요한 자본을 확보하고 이를 극동에 투자하여 국내적으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국외적으로 아태지역에서의 러시아의 입지를 높이려는 것이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에너지 시장인 유럽은 새로운 에너지 믹스전략을 통해 화석연료의 비중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려 한다. 러시아는 새로운 에너지 판매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더욱이 한중일 3국이 세계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소비하고 있지만 에너지 자급률은 낮고 에너지 생산지와의 거리도 멀어 에너지 시장에는 ‘아시아 프리미엄’이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에너지 판매처의 다변화 대상지역으로서 극동과 인접한 한중일 3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매력도 있지만 한중일 3국 가운데 한 국가에 에너지 판매를 의존할 경우 가격 협상력 등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한중일 3국이 서로 경쟁을 하는 소비시장이 되는 것이 러시아 입장에서는 바람직하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을 경유하여 최종소비지를 한국으로 하는 가스관 연결 사업은 러시아 국익에 부합하는 좋은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북핵 위기로 촉발된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경유하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 성사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원한다면 동해를 거쳐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과거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으로 2006년, 2009년 두 차례 유럽향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된 이후 러시아도 천연가스 경유국 위기를 회피하기 위하여 러시아에서 발트해를 경유하여 독일로 천연가스를 직접 공급하는 노드스트림을 건설한 경험이 있다.

물론 가스관을 북한을 경유하여 육상으로 연결할 경우 가스관 연결과 동시에 철도 연결과 전력망 연결을 동시에 진행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당연히 러시아는 북한을 경유하여 3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러시아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북핵 위기로 인해 3대 프로젝트의 성사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러시아의 기대는 크게 훼손되었다. 러시아를 북한을 엮어서 3자협력을 희망하지만 여기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극동개발을 위해 한중일 3국의 핵심적인 이익을 구실로 삼아 한중일 3국간 협력보다는 경쟁을 부추기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일본과는 쿠릴열도 반환과 관련된 협상을 매개로 일본의 극동개발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으며 우리와는 북한 이슈를 매개로 협력을 유발하고자 한다. 최근 북한 외채를 90억불 탕감하고 나진-하산 철로를 복원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북핵 위기로 인해 한국과의 협력이 지지부진하는 사이 러시아는 아베와 북방영토 문제를 두고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러시아가 역사상 가장 가까운 중국을 놔두고 극동개발에 한국과 일본을 적극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극동개발에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시도이며 동시에 아태지역에서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과의 대립구도를 약화시키는 목적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러시아 유럽지역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 및 현지화 노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만 모스크바는 이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 거두어들인 성공과 같은 투자를 극동에서도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 당국자들은 한국기업들이 인프라에는 투자하지 않고 과실만을 챙긴다고 인식하는 원인도 극동에서 소극적인 투자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극동개발에 한국의 참여를 독려하는 이유는 극동개발에 필요한 자본의 1/4만을 정부예산으로 충당하게 됨에 따라 나머지 3/4의 자본을 외국으로부터 유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자본을 한중일 그리고 아세안 국가로부터 유치하고자 한다. 푸틴 대통령이 참가하는 동방경제포럼은 매년 9월에 개최되고 있으며 포럼을 극동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한중일을 비롯한 아태지역 국가에 소개된다. 또한 지난 1년 동안 극동지역 개발에서 거두어들인 성과를 홍보하고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는 장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 푸틴 대통령은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극동개발을 위한 4가지 발전 방안을 제시하였다: ① 전력·에너지 연결에 의한 역내 에너지 슈퍼링 구축, ② 교통 인프라 건설 및 유라시아 운송로 역할 강화, ③ 디지털 경제 공간 구축, ④ 루스키 섬 국제학술·교육 및 기술 클러스터 조성.

이러한 분야에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를 원하고 있으면 위에서 예시한 분야에서 러시아는 한국기업이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최근 한국정부와 연해주정부가 공동으로 KSP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도를 벤치마킹하여 루스키 섬 개발 컨셉을 마련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 있다.

한편 소련시기부터 가장 경쟁력이 있는 산업분야는 방위산업이었다. 에너지 분야는 글로벌 시장의 자원가격 변동에 의해 이익이 결정되었지만 방위산업분야의 기업들은 미국과의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 프랑스를 이어 세계에서 무기를 세 번째로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불곰사업 등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들이지 못하여 방위산업 분야에서 한러 협력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다. 그러나 푸틴대통령이 국영항공공사와 국영조선공사를 설립하고 이 분야에서 협력을 통해 보다 경쟁력 있는 민간 항공기와 선박을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첨단 분야의 협력도 모스크바 등 서부 러시아보다는 극동에서 진행하기를 원하고 있다.

현재 하바롭스크에서는 수호이 제작 공장이 있으며 블라디보스톡 인근 볼쇼이 카멘에는 즈베즈다 조선소가 있다. 러시아는 극동개발의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하여 외국인 투자자에게 많은 세제상의 혜택을 제공하는 선도개발구역을 지정하여 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러시아 정부는 하바롭스크 수호이 공장과 볼쇼이 카멘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을 선도개발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작년 9월 우리 정상의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계기로 즈베즈다 조선소 현대화와 관련된 협력사업에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을 참여시킨 이유는 다가오는 북극개발 시대에 필요한 LNG탱크선, 쇄빙선 등 특수선박 건조에서 한국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극동에서 얻는 자원과 수산물을 단순하게 수입해가기 보다는 러시아 현지에서 가공하여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해가기를 원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 수산물 대부분이 선상 수출로 이뤄지며, 정작 자국 국민이 질 좋고 저렴한 수산물을 섭취하지 못한다며 강력한 대책마련을 지시하였는데 갓 잡은 생선을 냉동상태로 가지고 가던 수산물을 가공작업을 거쳐 수입해 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수산물 가공공장이 들어서 일자리 그리고 세수가 동시에 증가해 극동지역경제에도 기여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5위 규모의 수산강국임에도 러시아는 글로벌 마켓에서 주요 수입국이라는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극동지역에서 채취되는 각종 자원을 원자재 상태에서 가져가기 보다는 가공 처리하는 공장을 세워 고용 창출과 러시아 국익 증진에 기여하는 국가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매년 양국 간 명태 쿼터 협상에서 러시아가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은 명태를 잡아서 바로 가지고 갈 생각만 하지 말고 수산물 가공 공장을 건설하라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복합물류 네트워크 중심지로 거듭나도록 야심차제 준비하고 있다. 극동을 교통물류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관련 인프라 구축 및 활용에 한국이 적극 나서주기를 원하고 있다. 한국과는 TSR-TKR를 연결하여 극동 교통물류의 종축을 완성하고 중국과는 프리모르예 1, 2를 통해 횡축을 완성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물류네트워크의 주요 거점인 항만 현대화를 통해 산업 클러스터와 물류망 연결을 완성하고자 한다. 이는 러시아가 극동개발을 통해 간절히 원하는 기본 인프라 구축과 산업발전을 통한 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것이다. 러시아는 한국이 중국에 밀려 점차 글로벌 물류 운송망 네트워크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러시아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러시아는 자원판매시장과 기술보유국으로서 한국과의 협력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슈퍼링과 유라시아 물류망의 한축으로서 기능하여 러시아를 에너지와 물류의 허브로 거듭나게 하여 강대국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가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다가오는 북극개발과 연관된 조선산업 육성, 항만개발에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는 이 분야에서 러시아의 국익을 증대시키는데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국 신정부에의 기대감과 향후 과제/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내실화와 윈-윈의 결실/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러 3각 경협의 기대

한국의 신정부를 맞아 러시아는 남북관계 개선, 남·북·러 3각 경협의 재개 등에 대한 기대감 속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정부가 對러 특사단을 우호적으로 맞이하고 문재인정부 또한 과거 실현되지 못했던 가스관과 TKR-TSR 연결사업 등에 대한 재추진을 천명하는 등 양국 간 경협 증진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한러 관계는 외교관 맞추방 등 위기도 있었지만, 2014년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는 등 도약의 전기도 마련한 바 있다. 양국 관계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형성하는 등 전반적으로 잘 발전시켜 왔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실질 내용에 있어서는 ‘외교적 수사와 말로만의 성찬’이 무성하고,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시키지 못하였다는 평가도 있다. 양국 간 협력의 성과를 좀 더 냉정하게 직시하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실질적으로 내실화하지 못하는 등 기대만큼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한국의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또 다른 도약을 이룩해 내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푸틴정부는 사드 배치 반대, 북한체제 붕괴 방지, 평화체제 논의, 북·중·러 경협, 추가 도발 방지 등 중국과 공조가 가능한 부문에 있어 협력해 나가면서 남·북, 미·북 간 중재자적 역할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러시아는 북한의 4, 5차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해 외교적으로는 대북 비판을 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도 찬성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기존 우호관계를 지속해 나가려는 노력도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도 보다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러시아는 상황 변화에 따라 대북 소통 채널을 활용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미 푸틴 대통령은 2016년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북한과 일정한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대치 국면인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를 이용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우리로서는 북핵문제, 한반도통일 등 남북한 안보 현안에 있어 러시아의 긍정적 역할 제고 및 양국 국민들의 상대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 증대, 역내 질서 재편과정에서 한·러 간 전략 협력을 보다 강화시켜 나가는 것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한러 관계는 눈으로 확인하고 손에 잡히는 양국 협력의 결실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현재의 복합적 한반도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해 나가는 길 가운데 하나는 역내 국제정세 변화와 함께 러시아의 중재자적 역할 제고 및 이의 활용을 통해 상호 윈-윈(win-win)의 시너지 효과를 살려 나가는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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