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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감염병] 방역 선진국 한국은 기후대응 후진국, 방역 후진국 유럽은 기후대응 선진국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2020.04.28

코로나 이후 일상 회복 가능하겠지만 기후위기 한번 눈 앞에 나타나면 끝장

필자 조천호는 국내 대표적인 기상과학자다. 초대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을 지냈다. 지금은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재직하며 기후 위기의 파멸적 위험을 경고하는 ‘빅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파란하늘 빨간지구(2019)』가 있다.

기후변화와 감염병 창궐의 상관관계

COVID-19로 현대 문명의 구조적 결함이 드러났다. 바이러스 하나로 한순간에 전 세계가 흔들리고 심지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 다시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구조적 위기는 이미 과거에도 일어났었다. 기후 변화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인간을 공격했던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류가 화석연료의 시대에 진입한 이후 잠시도 쉬지 않고 누적되고 있는 기후위기다. 그 누적이 어떤 시점에 이르면,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는 파멸로 다가올 것이다.

먼저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기후학자들은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후 200년까지 600년 동안을 ‘로마 온난기’라 부른다. 로마가 전성기를 맞았던 시기와 대체로 겹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 시기 기후가 안정돼 농업 생산력이 좋아졌다. 이에 힘입어 로마는 서양에서, 한나라는 동양에서 제국을 넓혔다. 그 결과 기원후 200년 경에 전 세계 인구가 2억 5,000만 명이 되었다. 곳곳에서 도시가 발달했고, 로마와 한나라는 실크로드로 서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당시 식량 생산이 좋았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넉넉하게 먹지 못했다. 인구증가가 식량생산 증가를 늘 앞질렀기 때문이었다.

서양 로마와 동양 한나라를 휩쓴 천연두

‘로마 온난기’를 뒤이은 기원후 200년 이후부터 800년까지 한랭 건조한 시기가 왔다. 식량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대부분 사람이 영양 상태가 나빠져 질병에 쉽게 걸렸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감염병을 키우고 삽시간에 퍼지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기원후 160년 이후 로마와 한나라에서 천연두가 유행했다. 220년 한나라가 붕괴한 이후,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흑사병으로 중국 인구가 200년에 약 6000만 명에서 600년에 이르면 약 45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251~256년 사이에는 로마에서 처음으로 홍역이 발생하여 하루에 최대 5000명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럽 전체로 넓히면 당시 전 세계 인구의 5%인 약 1000만 명이 사망하였다.

※ 출처
<전 세계 인구 변화(200~1700년)와 북반구 중고위도 평균 기온의 변화(1~2000)>
→‘전 세계 인구’ (녹색 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민음사, 2019)
<북반구 중고위도 평균 기온>
→Ljungqvist, F. C. 2010, Physical Geography, Vol. 92 A(3), pp.339-351
<감염병 사망자 수>
→‘지구의 기후변화’ (라디먼, 시스마프레스, 2015)

19세기 미국행 배를 타기 위해 항구에 대기하고 있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모습.
아일랜드인의 대거 이민은 ‘감자마름병’이라는 식물 전염병에 의한 감자 대기근이 원인이었다.

온난기에 도시가 발달하고 교역 확대
소빙하기 오면 교역로 타고 감염병 확산

중세 온난기가 800년부터 시작하여 1300년까지 이어졌다. 농업 생산력이 좋아져 전 세계 인구가 800년 2억 명에서 1300년이면 4억 명으로 2배 증가했다. 이때도 도시가 발달하고 교역이 확대되었다.

1300년에서 1800년대까지는 소빙하기였다. 추울 뿐만 아니라 날씨 변동이 심해 가뭄과 폭풍우가 자주 일어났다. 이는 기온 하강 자체 보다 농작물에 더 심각한 피해를 일으켰다. 기근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영양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흑사병이 400년 동안 파상적으로 발생하였다. 유럽에서 2500만 명이, 중국에서 3000만 명이 1300년에서 1400년 사이에 죽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1492년에서 1700년 사이 유럽인들이 가져온 감염병에 면역성이 없어 절멸되다시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구의 85~90%인 5000만 명이 감소하였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말기 1618년부터 1643년까지 가뭄이 계속되어 굶어서 죽는 사람이 많았고 대규모 유민이 발생했다. 그 당시 감염병으로 중국 인구가 2000만 명 정도 줄었다.

과거 한랭 건조기에 약 0.4도, 그리고 소빙하기에 약 0.6도가 수백 년에 걸쳐 자연적으로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식량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그 한랭 건조기와 소빙하기 직전, 다시 말해 온난했던 시기에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발달했으며 도시 간 연결도 확대되었다. 이것이 기후 변화 상황에서 더 큰 위기를 일으키는 여건이 되었다.

매년 1억 명씩 증가하는 세계 인구

1500년 이후에도 감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지만, 세계 인구는 줄지 않았다. 무역이 발달해 식량이 넉넉한 곳에서 모자란 곳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산업혁명, 의료 발달과 농업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에도 인간 활동으로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여 기상 재난이 늘었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77억 명에 도달했다. 현재는 매년 거의 1억 명이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엄청난 인구, 복잡한 도시와 이를 연결하는 더 단단한 단일 체계로 통합되었다. 복잡성과 연결망이 증가할수록 그 구조 안에서 에너지 흐름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져 한곳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체 체계를 무너뜨리기 쉬운 상태가 되었다. 이처럼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취약해지므로 문명은 승리해 간다기보다는, 이것을 주고 저것을 얻는 거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도 말라리아 이미 증가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감염병이 4.7%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지구 가열로 흰줄숲모기와 진드기의 활동 기간이 늘어나 말라리아와 라임병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COVID-19에서는 기온과 습도 변화에 따른 직접적인 관련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인류가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자연에 머물던 바이러스가 인간 가까이 오게 되었다고만 짐작할 뿐이다. 인류는 지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기후와 환경을 파괴하고 변화를 일으켜 바이러스가 빠르게 진화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였다. 이에 따라 코로나19와 같은 인수 공통 감염병이 늘고 있다.

COVID-19는 감염 시점과 발병 시점 사이에 뜸을 들이는 며칠 동안의 지연이 있다. COVID-19 영향이 나타날 때까지 미적거리면 밀집된 도시와 연결망을 통해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킨다. COVID-19 그 자체 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이 더 문제다. 그래도 COVID-19가 지나가면, 우리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그 경험으로 다음 감염병에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감염병과 기후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COVID-19 보다 훨씬 더 위험한 기후위기를 다룰 때 같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감염병 이후 일상을 회복하는 것처럼 기후 위기도 잘 다루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다가오는 기후위기는 점차 더 뚜렷해지고 빨라지고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그 경고를 무시해왔다. 문제는 기후위기에서는 두 번째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화석연료 연소 이후 그 영향이 드러날 때까지 수십 년이 지연된다. 하지만 일단 임계 수준을 넘는 기후위기가 우리 앞에 나타나면 스스로 증폭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은 고도화된 문명 체계에서 확산되고 문명 자체를 붕괴시켜 다시는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할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면 감염병이 유행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늘 그래왔던 봄날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방역에 성공한 한국이나 그렇지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잿빛이다. 결국 인간이 문제다. 기후위기가 그 공포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미세먼지는 5일이면 파괴되지만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 축적

유엔은 인류가 지금 당면한 기후위기에 벗어나기 위해 문명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기후위기에서 중요한 것은 ‘회복력’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미세먼지도 햇빛 반응으로 5일이면 자연 파괴된다. 그러나 이산화탄소는 수백 년간 사라지지 않고 축적된다. 과거 100년 동안 지구 온도가 1도 올라갔다. 2040년이면 0.5도 더 올라간다. 2도를 넘는 순간 자기 증폭이 일어나 모든 게 끝장이다. 한국은 이번에 방역 선진국이라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지만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는 OECD 국가 중 최후진국 중 하나다. 여전히 석탄발전과 원전에 매달리고 있다. 방역 후진국으로 드러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이미 재생에너지 쪽으로 가기 위해 모든 산업 구조를 바꿔나가고 있다. 다소 늦었지만 우리도 그 길로 가야 한다. 지금은 혁신과 전환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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